포뮬러1, 70년 역사상 최대의 위기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10.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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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1은 르망 24와 더불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모터스포츠 중 하나이자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고 정교하며, 민첩한 레이스를 감상할 수 있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이다. 물론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모터스포츠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1’이라는 숫자를 포기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포뮬러1은 지금까지 늘 최고였고, 그래서 타협하지 않았으며, 수많은 제조사들과 레이싱 드라이버들의 마지막 무대이자 꿈의 무대였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다. 변치 않을 것만 같았던 이들의 명성은 2008년을 기점으로 조금씩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팀과 드라이버 그리고 포뮬러1의 주체 중 하나인 FIA 사이에 체결하는 콩코드 협정에서 이들은 지나치게 예산이 소비됨에 따라 포뮬러1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 동의했고, 그렇게 예산을 제한하는 협정, Budget Cap에 합의했다. 이 합의문은 오늘날에는 더욱 강화되어 현재 각 팀 별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의 범위를 비롯해 고용할 수 있는 인원, 윈드 터널의 가동 시간과 더불어 심지어 엔진의 개선 횟수까지 엄격히 지정하고 있다.

이는 일종의 자구책이었다. 20세기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이들이었지만 세상의 변화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질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무엇보다 제조사들의 이탈은 포뮬러1 전체의 볼륨을 축소시키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엔진을 공급하는 제조사의 이사회에서는 매년 이윤이 거의 남지 않는 이 사업에 언제까지 자본을 투자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었다. 영속성을 원했던 팀들은 따라서 예산의 제한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고, 결국 이번 해에 성적이 하락세라면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규정 변화에서 어떤 빈틈을 발견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흐름은 포뮬러1의 영속성을 계속 저하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이제 제조사들에게 포뮬러1은 더 이상 연구의 무대도 아니며 홍보의 무대도 아니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로 1970년대부터 수시로 포뮬러1에 모습을 내비치며 아시아 제조사로서는 유일하게 수많은 우승을 달성해온 혼다가 2021년을 끝으로 F1엔진을 더는 만들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들의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현재 내연기관, 특히 언제 양산차 엔진 제조 기술에 쓰일지 알 수 없는 앞선 기술들을 반영한 포뮬러1 엔진 개발에 더 이상 돈을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포뮬러1의 하이브리드 기술은 여전히 양산차에 반영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하이브리드는 이미 성숙화 단계에 접어든 기술이며, 게다가 혼다는 하이브리드 시장에서도 주류 브랜드가 아니다.

심지어 전기차 부문에서도 혼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일본 브랜드들이 시작은 빨랐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국민성에 비추어볼 때, 그들에게야 말로 전기차만큼 폐끼치지 않는 이동수단은 없겠으나 하이브리드 기술 개발에 투자된 비용을 회수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이들은 거의 100년만에 찾아온 자동차 시대의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혼다는 지금이라도 이 시장에 자신들의 위치를 굳건히 하기 위해 투자 계획을 수정했고, 이 과정에서 내연기관을 기반으로 한 포뮬러1 엔진 개발은 가장 먼저 제외시켜야 할 항목이 됐다. 이들의 결정으로 인해 현재 혼다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 레드불 레이싱과 알파 타우리(전 토로로소)는 다음 엔진 제조사를 찾아 나서야 하는 상황이지만, 메르세데스 벤츠는 레드불 레이싱에게 만큼은 엔진을 공급하지 않겠다 이미 선언했고, 페라리의 엔진은 여전히 신뢰성이 부족하며, 르노는 레드불 레이싱과 결별 과정에서 불편한 응어리를 남겼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레드불과 알파 타우리는 마땅한 엔진 공급사를 찾지 못해 레이스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다.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콩코드 협정에 의거, 2025년까지는 레이스에 참가할 것을 계약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조사를 찾는 것도 매우 어렵다. 모터스포츠에 열성을 다하는 혼다마저도 떠난 무대에 새롭게 진출할만한 마땅한 기술 보유사가 없을 뿐더러,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포뮬러1 엔진 연구 및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은 한마디로 매우 비싸다. 그럼에도 여기서 미래를 위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미 일부에서는 레드불, 알파 타우리 뿐만 아니라 향후 3~4년 내에 포뮬러1 전체의 생존이 근본적으로 의심받게 될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세계 자동차 엔진 제조사들이 모터스포츠 전체를 이제는 기피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포뮬러1을 비롯해 내연기관 엔진을 기반으로 삼는 모터스포츠에 참가해온 수많은 제조사들은 여전히 모터스포츠 부서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레이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 전기차 기술 본위로 포뮬러1이 이전하면 될 것이 아닌가?하는 약간의 긍정적인 방향도 강구해볼 수 있으나, 애석하게도 위에서 언급한 제조사들이 눈돌린 다른 모터스포츠가 바로 포뮬러E이다. FIA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어쩌다보니 현재 포뮬러E가 전기차 모터스포츠계의 포뮬러1이 되어 버렸고, 그래서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포르쉐, PSA, 르노 닛산 얼라이언스, 재규어 랜드로버가 이미 이 레이스에 참가하고 있다.

심지어 규정이 개정되면서 전기모터를 비롯한 파워트레인의 일부를 마치 포뮬러1처럼 자체적으로 제작할 수 있게끔 바뀌었다. 따라서 이미 포뮬러E에 막대한 투자를 진행해 전기차 파워트레인을 개발해온 제조사들은 포뮬러1이 전기차 플랫폼으로 바뀐다고 해도 예전처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물론 FIA도 애써 흥행궤도에 올려 놓은 포뮬러E의 지위를 애써 낮추지 않으려 할 것이다.

르노 F1의 CEO 시릴 아비테보울은 다음과 가이 이야기했다.

“인식의 전환에 성공하지 않으면, 현 상황을 되돌리기가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 내연기관 제조사들의 이탈을 받아들여야만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인식을 새로이 설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척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으로 현재의 상황을 정리했는데, 이게 현재 포뮬러1이 처한 복잡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탄생 70년만에 포뮬러1은 지위와 방향성을 거의 잃어갈 위기에 처했다. 한 때는 목숨을 걸고 타야하는 생사의 전쟁터이자, 당장 우주라도 뛰어 들 것 같은 하이테크놀로지의 집합이었으며, 전세계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투어 후원하는 세계 최대의 상업적 스포츠였지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을 과거의 영화로 돌려야 할 때가 찾아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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