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는 자동차 업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자동차라는 개념부터 생산, 판매방식 자체를 송두리째 바꿨고 마케팅과 광고 방식까지 새로움으로 승부했다. 그렇게 테슬라는 전기차를 대표하고, 또 벤치마크 대상이 됐다.(지금은 조금 시끄럽지만...)

여기 테슬라와 정 반대노선을 걷는 자동차 제조사가 있다. 바로 메르세데스-벤츠다. 물론 벤츠도 전기차에 집중하고 있고, 벌써 많은 전기차를 판매하고 있다. 뭐가 다르나고? 테슬라는 자동차는 이동을 할 수 있는 기능성을 가진 장치(Device)로 접근했고, 벤츠는 자동차를 자동차 그 자체(Vehicle)로 접근했다는 점이 다르다. 말장난 같아 보이는 이 두가지. 대체 뭐가 다른 것인지 벤츠 EQE 350+를 통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디자인에서 처음 느낀 부분은 ‘대체 EQS와 뭐가 다른거지?’라는 것이다. 자동차에 큰 관심이 없다면 EQS와 EQE는 같은 차라고 해도 믿을 듯 하다. 크기는 EQS보다 작지만 나머지 디자인요소가 거의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활처럼 보이는 원-보우(one-bow) 라인은 지금 봐도 컨셉트카 같은 느낌을 전달한다. 곡선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꽤나 컴팩트해 보이는데, 실제로 EQE는 차체 길이가 5m에 가까운 크기를 갖는다.

막혀진 그릴은 수많은 벤츠 로고로 채워 넣었다. 벤츠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 헤드램프는 260만픽셀 해상도를 갖는 디지털라이트를 기본으로 넣었다. 해외에서는 글씨나 그림도 만들어주는데 우리나라도 규제가 풀리면 곧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사용하지도 못하는데 이걸 빼고 가격을 낮춰주지…

프런트 트렁크는 과감히 없앴다. 벤츠는 이 부분을 수납공간보다 초대형 헤파필터를 넣어서 실내에 더 깨끗한 공기를 공급하는데 집중했다. 소비자에 따라 더 좋아할 수도, 아니면 아쉽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참고로 테슬라는 초대형 헤파필터를 넣으면서 프런트 트렁크도 갖췄다.

측면부나 후면부 역시 EQS에서 봤던 디자인 그대로다. 플러시 타입 도어핸들, 와류발생을 억제시키는 휠 디자인 등으로 공기저항도 줄이도록 했다.

실내는 화려하다. 이 화려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앰비언트 라이트다. 차량에 접근하면 앰비언트 라이트도 켜지는데 다채로운 색으로 탑승자를 반겨준다. 여기에 12.3인치 계기판과 12.8인치 OLED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그래픽도 화려하다.

대시보드에도 벤츠 로고를 촘촘히 넣었다. 내가 벤츠를 타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릴 일은 없겠다. 너무 과한 느낌도 있어 호불호가 있을 듯 하다.

벤츠 코리아가 공을 들인 부분이 2가지 있다. 첫번째는 음성인식이고 두번째는 내비게이션이다. 먼저 음성인식 기능을 크게 끌어올렸다. EQ 브랜드 도입 초기에는 한국어 음성인식 기능이 영어 음성인식 대비 지원하지 못하는 기능이 많았다.

반쪽짜리 음성인식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완성형에 가까워진 듯하다. “근처 중식당 별 3개 이상 짜리로 찾아줘”, “서울역으로 가는 도중 한식당 찾아줘”와 같은 복합적인 연산처리가 필요한 명령도 잘 찾아준다. “피곤해”라고 말하면 공기를 순환시켜주고 앰비언트 라이트를 바꿔 분위기를 바꿔주며 마사지 시트를 작동시켜 몸의 피로를 풀어 주기도 한다. 이제는 뉘앙스를 알아듣고 문제해결까지 해주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내비게이션 완성도도 크게 발전했다. 이제 대도시는 물론 소규모 도시까지 차로 표시를 해줄 정도로 정밀화가 이뤄졌다. 전기차 모델이기 때문에 충전소 정보도 보기 쉽게 만들었다. 며칠 전에 새롭게 변경된 충전소 정보도 발빠르게 업데이트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 테스트에 나선 또 다른 전기차는 과거 충전소 정보를 표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재 충전 가용 현황과 충전기 KW 정보까지 보여줬다. 이정도면 국산차나 스마트폰 전용 내비게이션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수입차로는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보인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커다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처음에 어느정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기능이 많은 것은 좋은데 가끔 기능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눌러봐야 한다. 공조장치 부분은 고정돼 있어 빠르게 조작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테슬라처럼 게임 기능도 넣었는데 아직 컨텐츠나 게임 완성도면에서 이제 발걸음을 뗀 수준이다.

앞좌석 시트는 통풍과 열선기능에 마사지까지 지원한다. 기능상 아쉬움은 없지만 시트 조작 스위치가 확실하게 눌린다는 감각을 전해줬으면 좋겠다. 터치도 아닌데 그렇다고 스위치가 움직이지도 않는다. 보다 명확한 조작감을 전달했으면 한다.

휠베이스가 3.1m를 넘는다. 그런데 뒷좌석이 인상적일 정도로 넓지는 않았다. 쿠페형 루프로 인해 머리 공간도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대신 트렁크 공간은 충분히 넓어 비즈니스 세단으로 이용하기에 문제 없었다.

시동 거는 법은 내연기관 자동차와 동일하다. 시동버튼을 눌러 차량을 준비시켜야 하는 것. 폴스타는 시동버튼을 삭제했고 폭스바겐 ID.4는 시동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출발할 수 있게 만들었다.(시동 버튼은 있다.) 벤츠는 여전히 자동차다운 준비과정을 추구하고 있다.

잠깐만 움직여도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우수한 승차감 덕분이다. 에어서스펜션이 탑재된 것도 아닌데 부드럽고 노면의 충격을 센스 넘치게 걸러준다. EQS와 주행을 해보니 왜 전기차의 S-클래스라고 강조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EQE도 마찬가지다. 운전을 해보면 전기차 중에서도 꽤나 윗급에 위치한다고 알아차릴 수 있을 고급스러운 감각이 느껴진다. 자동차 전문가라서가 아니다. 일반인도 타보면 확실히 다른 전기차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몸을 짓누르는 힘이 느껴질 정도는 아니다. 물 흐르듯이 편안하게 주행하는데 속도계도 빠르게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 전기모터는 215kW(약 290마력)와 57.6kgf·m의 토크를 만들어낸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6.5초가 소요됐다. E350 4MATIC 모델이 6.03초를 기록했으니 조금 더 느린 정도라고 보면 된다. E250 모델이 7.57초라는 점을 생각하면 E-클래스 중 중간정도 급의 성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참고로 EQS 450+는 6.13초를 기록했다.

평균적인 가속성능을 보여준 이면에는 무게 역할이 컸다. 직접 무게를 측정해본 결과 2359kg으로 나왔다. 성인 남성 1명만 탑승해도 2.4톤에 이르는 무게다. 무게 중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데, 경량화를 추구하면 어느정도 고급스러운 마감과 감각을 포기해야 한다. 이중 벤츠는 고급스러움을 택했다고 보면 된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고 있으면 시속 200km의 벽도 넘는다. 이때 소요된 시간은 25.99초. 우선 CLS300d(27.97초)보다 빨랐다. AMG GLE 53 쿠페(24.11초)보다 소폭 부족한 수준이다. 어느정도 성능 발휘를 하는 모델과 비슷한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에 대부분 환경에서 힘이 부족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소비자는 없을 듯 하다.

고속 안정감이 인상적이다. 부드러움 속에서 어느정도 단단함도 챙겼기 때문에 출렁거리지 않고 차체를 잘 붙잡았다. 물론 EQS처럼 놀라움까지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내외 전기차와 비교하면 확실한 차이를 보여준다.

주행모드간 힘의 차이가 크게 바뀌는 정도는 아니다. 어느정도 체감은 되지만 에코모드로 설정해도 주행시 답답함이 크지 않고 스포츠 모드로 돌렸다고 갑자기 큰 힘이 쏟아지는 정도는 아니다. 단, 에코모드에서는 가속페달이 일정 수준만 밟히도록 변경되는데 그 정도 만으로도 시내 주행은 문제없었다.

정숙성도 수준급이다. 시속 80km 주행 환경에서 53.5dBA을 기록했다. 참고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80이 54.5dBA을 보인 바 있다. 벤츠 최상위 모델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능가하는 정숙성을 달성한 것이다. 이를 위해 각종 방음 대책이 반영됐다. 무게는 조금 더 늘었겠지만 전기차 특유의 노면 소음과 풍절음 등을 정말 잘 잡았다.

다만 50km/h 정도 속도에서 특정 요철 구간을 지날 때 선루프 떨리는 소리가 상당히 심했다. 조금 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다.

단순히 EQE가 편안함에 초점이 맞춰진 차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2.4톤이라는 무게를 생각하면 ‘역시 벤츠는 다르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길이 5.5m에 육박하는 마이바흐 S580도 인상적으로 달렸던 벤츠 아니던가? 그보다 컴팩트한 EQE의 움직임은 더욱 경쾌했다.

운전자를 당황시키지 않는다. 후륜구동 모델이라고 급작스럽게 차가 돌려는 움직임이 없다는 것이다. ESP는 off를 시켜도 다시 개입하는 성격이다. 개입이 빠르냐 느리냐의 차이를 둔 것인데, 기본적으로 차량이 이상 움직임을 보이기 전에 막아주는 성격이다. 꽤나 보수적이라는 것.

동시에 정교하다.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티어링휠을 조작하면 정확히 그대로 돌아 나간다. 차체가 5m에 가깝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륜 움직임 후 후륜도 빠르게 따라와준다. 부드러웠던 서스펜션은 차체가 한쪽으로 쏠리는 순간 단단하게 지지해주며 불안정한 움직임을 방지해줬다.

믿음도 간다. 천천히 주행해도, 빠르게 달려도 운전자와 차량간 소통이 원활하다. 그만큼 차량을 믿을 수 있다. 의외로 이것이 가능한 차를 만드는 제조사가 많지는 않다. 특히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차로 변경된 이후 자동차와 운전자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게 바뀐 경우도 많다. 하지만 벤츠는 아니다. 여전히 주행 완성도는 최고 수준이다.

제동성능도 좋았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최단거리가 36.85m였다. 테스트가 반복돼도 가장 많이 밀려난 거리는 37.90m. 불과 1m 남짓이다. 평균제동거리는 37.35m로 제동거리와 지속성 모든 부분에서 만족감이 높았다.

페달에서 느껴지는 제동감각 자체는 소폭 특이했다. 우선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회생제동 시스템부터 작동한다. 이 부분은 다른 전기차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후 더 깊이 밟으면 어느 순간부터 물리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감각이 전달된다.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의 브레이크 작동감각보다 희미하지만 조금만 신경 쓰면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 전달된다. 이를 통해 운전자가 브레이크 페달 조작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단순히 탱탱볼을 밟는 브레이크페달의 이질감을 최소화 시키고자 노력한 흔적이랄까?

전기차로써 주행거리는 매우 만족스럽고 충전은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완충된 상태에서 500km는 쉽게 주행할 수 있다. 서울에서 강원도권 왕복은 무리 없는 수준이고 부산 왕복은 한번 정도만 충전해주면 된다. 신경 좀 쓴다면 600km도 불가능하지 않을 듯 하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별다를 것 없는 주행거리를 갖게 된 것이다.

다만 충전을 할 때 800V 시스템의 부재가 아쉽게 느껴졌다. 최대 170kW 충전을 지원하지만 대체적으로 70~80kW 충전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내 시장에 설치된 보편적인 급속충전기가 100kW급이니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같은 환경에서 현대 기아는 2배 빠른 속도로 충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향후 200~250kW 최대 350kW급 초고속 충전시설도 확대 설치 중이다. 이러한 시설이 보편화된다면 EQE의 충전 경쟁력은 빠르게 낮아질 것이다.

벤츠 EQE. 고급스러운 전기차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있다. 테슬라와는 정 반대다.

테슬라는 ‘혁신’으로 승부한다. 자동차라는 개념 자체를 무너뜨렸으며 무인 생산 시스템 등 혁신으로 가득하다. 라이다 없이 카메라로 끊임없이 자율주행을 추구하고 있는 점도 혁신적이다. 이러한 혁신 덕분에 자동차에서 중요했던 조립 완성도, 승차감, 정숙성, 고급화 등을 후순위로 미룰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혁신이 있는 테슬라를 쫓고있다.

반대로 벤츠는 순수한 자동차 그 자체에 집중했다. 전기차든 내연기관이든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전달해야하고 멋져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 주행을 해도 운전자에게 안정감도 전달해야 한다. 이것이 벤츠가 추구하는 접근법이다. 확실히 운전을 하면 다양한 부분에서 세세하게 튜닝을 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테슬라가 가는 길, 벤츠가 가는 길 모두 옳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집중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차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판단은 소비자가 해야 한다. 똑 같은 1억원의 가격. 당신은 테슬라를 살 것인가 벤츠를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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