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고급스러움,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 진고장(?) 등등이 떠오를 것이다. ‘고성능’이나 ‘스포츠 주행’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방면에 특출난 자동차 회사는 많은 팬들을 거느릴 수 있다. 하지만 더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약점이 존재한다. 랜드로버도 이러한 한계를 갖는다. 요즘 유행하는 SUV에 특화된 회사지만 온로드 주행은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소비자 대다수가 운행하는 포장도로에서는 랜드로버보다 벤츠나 BMW의 SUV가 더 잘 달릴 것 같은 이미지라고 하면 바로 이해될 것이다.

그래서 랜드로버는 얼마전부터 이러한 이미지를 깨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 한때(2014년)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양산 SUV 신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BMW X6 M의 기록보다 10초나 빨랐다. 미국 파이크스 피크 힐 클라임(Pikes Peak International Hill Climb, PPIC) 경기에서 양산 SUV 신기록도 작성했다.

신기록을 작성한 모델은 모두 레인지로버 스포츠였다. 레인지로버가 최고의 고급스러움을 보여준다면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랜드로버도 이렇게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레인지로버 스포츠가 3세대로 변경됐다. 5세대 레인지로버가 인상깊은 고급스러움을 보여줬었기 때문에 더욱 기대감이 높아졌다.

첫인상은 이 차가 레인지로버가 맞나? 싶을 정도다. 레인지로버라기보다 벨라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기 때문이다. 레인지로버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강인함과 진중함, 품격 있는 모습보다 날렵한 이미지가 더 느껴진다. 당장 범퍼 디자인만해도 젊은 소비자들이 좋아할 프런트윙과 공기흡입구 등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헤드램프부터 그릴, 범퍼 등 많은 부분이 레인지로버와 다르다. 부품 공유는 할 생각 없어 보인다. 그만큼 디자인을 우선시해 개발했다는 것. 요즘처럼 복사+붙여넣기가 당연시하게 여겨지는 시대를 살다 보니 새삼 랜드로버의 뚝심이 대단해 보인다.

디지털 LED 헤드라이트를 갖췄다. 내부에 각각 130만개의 개별 제어가 가능한 디지털 마이크로 미러(DMDs)를 갖추고 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냐고? 조명으로 글씨나 그래픽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최대 16개의 물체를 식별하고 필요한 부분만 빛을 보낼 수도 있다.

전체적인 비율도 다르다. 레인지로버보다 짧고 지붕도 뒤로 갈수록 조금 더 낮게 내려간다. 여기에 22인치 대형 휠로 멋진 비례감도 갖도록 했다.

리어램프 디자인도 완전히 다르다. 좌우가 연결된 형태지만 그래픽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머플러를 노출시키지 않았던 레인지로버와 달리 2개의 머플러를 노출시켰을 뿐 아니라 디퓨저 디자인까지 갖췄다. 테일게이트는 위아래 같이 열렸던 레인지로버와 달리 한 면이 열리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진정한 레인지로버 혈통이냐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1세대 모델은 레인지로버가 아닌 디스커버리를 바탕으로 레인지로버 디자인을 입혀 만들었었다. 2세대 모델은 레인지로버와 레인지로버 스포츠, 디스커버리가 동일한 플랫폼을 사용했다. 하지만 3세대 모델은 진정으로 레인지로버와 동일한 MLA-Flex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됐다. 덕분에 레인지로버와 동일한 비틀림강성(33,000Nm/deg)을 갖고 앞으로 전기차 버전도 추가된다. 재규어 F-페이스를 바탕으로 개발된 레인지로버 벨라는 불가능한 영역이다.

덕분에 인테리어는 레인지로버를 제대로 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이다. 고급 원목대신 카본으로 꾸며 놓은 정도만 제외하면 전체적인 디자인을 비롯해 고급 소재로 마감되는 부분까지 동일하다.

계기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공조장치와 터레인리스폰스 다이얼까지 모두 동일하다. 센터콘솔에 자리한 냉장고도 똑같다. 뒷좌석의 엔터테인먼트 모니터와 시트 구성, 공조장치와 USB 포트 등도 동일하다.

차이점을 꼽자면 반짝이는 크롬 금속장식대신 어두 빛을 보이는 새틴크롬으로 조금 더 젊은 분위기를 냈다는 것이 있다. 여기에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운전석 시트도 레인지로버보다 20mm 낮출 수 있어 조금 더 스포티한 자세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시트 포지션을 낮춘 것은 좋다. 문제는 스티어링휠의 틸트 & 텔레스코픽 움직임 범위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 이 때문에 낮아진 시트에 스티어링휠을 맞추지 못하고, 결론적으로 뭔가 불편한 자세가 만들어진다. 계기판도 스티어링휠에 잘려 보이기까지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트를 다시 올려야 한다. 조금 더 세심함이 필요하다.

2억 2천만원이 넘는 차(레인지로버)와 1억 5천만원대 차량(레인지로버 스포츠)간 구성 차이는 존재한다. 먼저 동일한 계기판이지만 레인지로버보다 테마를 변경할 수 있는 항목이 적어졌다. 완성된 소프트웨어를 막는 방법으로 구성 차이를 만드는 것을 랜드로버도 익히게 된 것이다!

뒷좌석 시트도 등받이만 전동식으로 작동한다. 시트 쿠션까지 움직이고 심지어 앞으로 이동해 접히기까지 하는 레인지로버와 차이를 보인다. 뒷좌석 선셰이드는 수동으로 조작해야 한다. 이 부분의 차별은 너무 심했다. 아무리 레인지로버에서 가격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이 차의 가격은 1억 5천만원이 넘는다. 전동 선셰이드를 장착하는 것이 그렇게 아까웠을까?

트렁크 공간은 충분히 넓다. 어퍼미들급 SUV에 해당하는 차체 크기, 완전히 평평하게 접히는 시트 등이 공간 효율을 높였다. 여기에 요즘 보기 힘든 풀사이즈 스페어 타이어까지 갖추고 있다. 대부분 제조사들이 타이어 리페어킷으로 바꾸고 있는데 랜드로버 만큼은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같은 입문형 모델부터 풀사이즈 스페어 타이어를 고집하고 있다. 이런 고집은 아주 칭찬한다.

이제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주행을 시작해보자. 국내시장에서는 직렬 6기통 3.0 디젤(D300)과 직렬 6기통 3.0 가솔린 터보(P360)이 먼저 출시됐다. 테스트 모델은 360마력과 51kgf·m의 토크를 갖춘 가솔린 사양이다.

시동을 건다. 벨트구동 스타터-제네레이터(BSG)를 사용하는 48V 시스템 덕분에 엔진이 스르르 깨어난다. 조용하지만 시끄럽다. 무슨 뜻일까? 차체로 유입되는 정숙성은 좋다. 하지만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식히기 위한 팬 구동 소음이 꽤나 거슬린다. 측정된 아이들 정숙성은 38.5dBA. 일상 생활에서는 모르고 넘어갈 수 있지만 고급 세단의 정숙성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차량 중앙 부분이 가장 조용하다. 앞으로 가면 엔진소리가, 뒷좌석으로 가면 배기구에서 만들어지는 소음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뒤로 갈수록 조용해졌다. 인포테인먼트 팬 작동 소음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시속 80km 주행시 측정된 정숙성은 57.5dBA 수준. 충분히 좋은 수준이다. 하지만 고속도로와 같은 100~110km/h 혹은 그 이상 속도의 주행 환경에서는 의외로 풍절음이 들어왔다. 소비자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 팀이 직접 측정한 무게는 2547kg. 레인지로버의 2755kg과 비교하면 208kg 가볍다. 하지만 성인 남성 1명만 탑승해도 2.6톤이 된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엔진에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차량은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레인지로버에서 느꼈던 고급스러운 감각이다. 일상 주행을 한다면 힘은 딱 적당한 수준. 추월을 하기위해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어느정도 무거운 무게와 제한적인 힘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 감각이 힘 없고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레인지로버의 8기통 BMW 엔진이 워낙 힘이 넘쳤기에 비교가 됐을 뿐이다. 엔진 반응 자체는 좋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덕분에 답답함없이 빠른 반응을 이끌어낸다.

저속에서 주행을 할 때 일부 변속기에서 전달되는 쇼크를 느낄 수 있다. 보통 기어 단수가 내려갈 때 발생하는데, 고단이 아닌 3단에서 2단, 1단 등으로 내려가는 저단 환경에서 이러한 문제가 나왔다. 8단 이상의 다단화 변속기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기도 한다. 또, 시승차만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해는 하지만 썩 기분 좋은 감각은 아니다.

에어서스펜션이 탑재됐다. 덕분에 최대 135mm까지 차체를 들어올릴 수 있다. 강철스프림은 흉내 낼 수 없는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레인지로버 ‘스포츠’라는 이름처럼 어느정도 성격의 변화는 있다. 레인지로버가 요트를 타는 것만 같은 고급스러움이라면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어느정도 노면 변화나 요철에 반응해준다. 그럼에도 대다수 일반 소비자들은 인상적인 승차감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일상주행시 편했던 부분은 U턴을 할 때다. 최대 7.3로 조작되는 후륜조향 기능 덕분에 교차로와 U턴, 주차 등 환경에서 쉽게 운전할 수 있었다.

연비는 극단적이었다. 정체환경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면 연비는 3~4km/L대에 불과했다. 2km/L대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정속주행을 하면 연비가 최대 16km/L까지 상승했다. 연비 좋은 중형세단 수준을 보인 것이다. 8기통 엔진을 사용한 레인지로버가 고속도로에서 평균 10km/L의 연비를 기록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장거리 이동시 충분히 좋은 수준의 연비를 보였다. 물론 가속페달을 시원스럽게 밟으면 연료를 쭉쭉 들이키며 연비가 바로 내려앉는다.

6기통 엔진이 탑재된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가속성능을 확인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6.47초를 기록했다. 참고로 공식 제원은 6초. 같은 3리터 엔진을 사용하는 벤츠 GLE 450이나 아우디 Q7 55와 같은 모델이 5초 후반~6초 초반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살짝 느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이 원인이다.

제동성능은 조금 더 좋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형 디스크에 전륜 4피스톤 캘리퍼를 갖췄음에도 시속 100km에서 정지하는데 이동한 최단거리는 40.09m를 기록했다. 이후 차체 무게 때문인지 테스트가 반복될수록 제동거리는 조금씩 늘어나 최종적으로 43.8m대까지 늘어났다. 저렴한 가격대의 일본 대중 모델이라면 큰 문제삼지 않지만 현재 모델은 1억 5천만원 이상을 지불해야하는 모델이다. 제동 내구성을 비롯해 순수 제동거리도 보다 강화되길 바란다.

스티어링휠을 돌리며 느끼는 차량의 거동은 랜드로버답다. 핸들링 성능이 뛰어난 것 까지는 아니지만 잘 달리기 때문이다. 무거운 덩치에 의한 롤은 어느정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운전자를 불안하게 만들 정도까지는 아니다.

나름 스티어링휠을 조작하면 날렵한 움직임까지 표현했다. 여기서 표현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실제로 민첩하고 날렵하게 움직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느낌을 운전자에게 전달 하기 때문이다. 포르쉐 카이엔이나 BMW X5 등과 비교하면 그보다 무딘 느낌을 전달하긴 한다.

승차감은 충분히 좋으면서 바디롤까지 잘 잡아준다. 여기에 원하면 차고를 높여 오프로드도 달릴 수 있다. 무엇보다 일관적으로 고급스러운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가장 큰 강점이다.

랜드로버가 달라졌다. 좋은 차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2박 3일간 테스트 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겠지만 이 기간동안 잔고장도 없었고 타면 탈수록 만족감이 높았다. 노골적으로 돈을 아끼려는 티도 내지 않았다는 점은 칭찬하고 싶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 요즘은 2억이 넘는 벤츠 S580에도 직물 헤드라이너가 사용되는 시기 아니던가? 랜드로버는 차 값이 비싼 만큼 비싼 값을 한다는 것이 쉽게 느껴졌다.

아직도 많은 소비자들은 랜드로버에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고 있다. 비단 한국 시장뿐만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해외 사정도 비슷하다. 문제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바꾸는 것은 정말 힘들다는 것. 그래서일까? 랜드로버가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적어도 먼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쌓였던 랜드로버에 대한 선입견이 바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격은 부담스럽다. 가장 저렴한 모델 가격이 1억 3천만원대다. 비슷한 6기통 3.0리터 엔진이 탑재된 벤츠 GLE, BMW X5는 이보다 1만원 이상 저렴하다. 심지어 포르쉐 카이엔도 이보다 싸다.

요즘 다시 자동차 제조사들이 하나둘씩 할인이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할인 하면 랜드로버도 빠지지 않는다. 여기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바로 구입을 하지 않고 할인을 기다릴 것이다.

애초부터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국내시장에 출시하길 바란다. 볼보와 폭스바겐이 그렇게 한국 시장에서 자리잡았다. 나중에 2~3천만원 할인해주기보다 처음부터 1~2천만원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억 6천만원에 이르는 가격은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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