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장기 계획 대대적 변경... 아우디 자율주행 프로젝트도 취소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2.12.0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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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디에스 회장은 분명 폭스바겐 그룹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고, 로드맵으로 만들어진 그의 비전은 하나 둘 실현되어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새로운 회장, 올리버 블룸이 전 회장의 로드맵에 대대적인 수정을 가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의 많은 것을 바꾸어 놓은 헤르베르트 디에스 회장의 로드맵, 그 중심에는 전동화 전략이 있었다. 엄청난 몸집으로 쉽게 움직이기 힘든 폭스바겐 그룹을 전동화의 중심으로 이끌었으며 ID.3, ID.4를 시작으로 전기차 전용 생산 공장을 설립했고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비롯해 소프트웨어 개발 그룹인 카리아드를 만들고 거대 그룹을 새로운 물결로 이끄는 듯 보였다. 이 모든 것은 폭스바겐 그룹이 선언한 2050 탄소 중립 전략에서 시작됐으며 그룹의 체질 전체가 바뀌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활약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포르쉐에서 올라온 올리버 블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렇게 디에스 회장의 자리를 대신한 올리버 블룸 회장은 한동안 전임 회장이 만들어 놓은 로드맵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올리버는 이내 칼을 빼들고 기존 로드맵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난 11월, 자율주행 자동차 생산을 위한 전진 기지인 볼프스부르크 전기차 공장 설립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이 공장에서 폭스바겐 그룹의 새 플래그십 세단, 트리니티가 생산될 예정이었지만 공장 설립이 취소되면서 이 프로젝트도 취소될 위기에 놓였다.

이런 결정은 아우디의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우디는 몇 해 전, 고도화된 자율주행 자동차를 적어도 2024년에 공개하고 2025년에는 출시할 것이라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 프로젝트는 1년간 진행이 연기되었으며, 결국 올리버 블룸 체제에서 더 이상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포르쉐, 아우디, 폭스바겐은 각자의 프로젝트로 레벨 4에 해당되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수년 내에 출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리버 블룸의 폭스바겐 그룹은 아르테미스로 명명된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프로젝트를 축소하기로 결정했고, 이 사업의 주체를 승용차 사업부가 아닌 폭스바겐 상용차 사업부로 이관시켰다. 따라서 포르쉐, 아우디, 폭스바겐이 각자 추진하던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는 더 이상 진행될 수 없으며, 현재 폭스바겐 상용차 사업부에서 진행하는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에서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폭스바겐 상용차 사업부는 택시와 버스의 중간 형태인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를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시범 운영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폭스바겐의 미니밴, ID. 버즈를 기반으로 제작될 자율주행 미니밴이 투입될 예정이다.

물론 폭스바겐 그룹의 전동화 전략의 근본까지 흔들린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의 미래라며 내세웠던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는 것은 비단 폭스바겐 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자율주행 자동차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제조사들 중 상당수가 전과 달리 소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메르세데스 벤츠의 경우 도로 주행에서 자율 주차로 범위를 좁혔고, 테슬라는 FSD를 여전히 베타 버전이라 소개하고 있다. 인프라는 분명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라이다 센서의 가격은 내려가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기술은 점점 올라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는 이 사업의 성공을 저해하는 요인들이 여전히 많다. 각 나라마다 다른 법규 문제를 비롯해 책임 소재의 규명과 같은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못했으며, 더욱 불안한 것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온다고 해도 함께 달리는 인간 운전자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회피하거나 대응하기에는 인공지능의 성능이 더 개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저히 이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거대 제조사 입장에서 언제 수익을 회수할지 알 수 없는 이 사업에 끊임없이 자본을 수혈할 수 없는 노릇이며 무엇보다 임기가 정해진 회장직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자기 임기 내 끝낼 수 없는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한다는 것은 당연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물론 올리버 블룸 회장의 로드맵 수정 결정이 반드시 자신의 임기 내 업적 관리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이유임에 틀림없다.

이 대목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세계 1위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 그룹의 변화와 결정은 다른 제조사들에게도 언젠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이기 때문에 이들의 판단과 결정이 자동차 트렌드 혹은 현재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누군가는 폭스바겐 그룹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며 특히 전기차 부문에 있어서는 GM을 비롯해 한국 제조사들에 비해 야망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많지만, 전동화와 자율주행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기업의 부담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자동차의 미래가 빨리 도래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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