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트래버스는 2019년 11월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2018년 12월 출시된 현대 팰리세이드가 대박 행진을 이어가던 상황이었다. 이를 유심히 본 한국지엠은 약 1년 정도 준비 기간을 갖고 트래버스를 내놨다.

성적표(판매량)를 보자.

단순 계산상으로 팰리세이드가 21배 더 팔았다. 트래버스는 수입차니까 수입차랑 비교해야 한다고? 포드 익스플로러의 2020년 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누적 판매량이 1만 3366대다.

잘 팔리기 힘들었다. 차가 정말 좋았다는 점은 인정. 그러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조차 없고 팰리세이드처럼 3열시트가 전동이 아닌 수동으로 조작해야 했다. 2019년 당시 팰리세이드는 최상급에 거의 모든 옵션을 더해도 4천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었지만 트래버스는 시작가격이 4520만원으로 상대적으로 비쌌다.

시간이 흘러 트래버스가 페이스리프트됐다. 물론 현대 팰리세이드도 페이스리프트를 마친 상태다. 착한 가격, 가성비 최고로 꼽히던 팰리세이드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싼타페와 큰 차이 없던 가격은 어느새 4륜에 중간 트림, 중간 옵션만 더해도 5천만원을 넘어 버린다. 캘리그래피 트림에 견인 기능을 포함해 다양한 옵션을 더하면 5800만원에 육박한다.

고가 정책을 펴는 현대차, 그 덕분에 트래버스가 싸울 판이 다시 깔렸다. 여전히 트래버스의 주력 트림은 5천만원대다. 그렇다면 종합 경쟁력은 어떨까?

디자인 (Design)

디자인 일부가 달라졌다. 전기형 모델이 온순한 인상을 전했다면 신형 모델은 강하고 차가운 얼굴을 들고 왔다. 헤드램프도 방향지시등을 포함해 풀-LED로 변경됐다. 상하 분리형 램프 디자인이 사용되면서 메인 해드램프는 범퍼 양 측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개등 주위에도 조명이 더해졌다.

측면부는 거의 동일하다. 테스트 모델은 레드라인 에디션. 블랙 & 레드 디자인의 휠, 블랙 윈도우 프레임 마감이 적용됐다. 전기형 모델은 레드라인 에디션이라도 사이드 미러가 차체 색상으로 마감됐지만 페이스리프트 이후 사이드 미러까지 블랙 컬러로 통일됐다.

후면 램프 디자인이 헤드램프와 유사해졌다. 큰 틀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내부 그래픽 정도는 변했다.

실내 공간 및 편의장비 (Interior & Convenience)

실내 디자인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최신 자동차 느낌이 덜 난다. 계기판에 디스플레이가 있다고 해도 아날로그 타입, 바늘도 사용한다.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가 특별히 크지도 않다. 요즘 하도 버튼 레스 디자인이 많다 보니 물리 버튼도 많아 보인다.

하지만 트래버스는 공간을 위한 자동차다. 그 본질에 충실하다. 2열 시트는 슬라이드와 시트백 조절이 가능하며 전용 공조장치도 있다. 230볼트 파워 아울렛과 USB 포트를 통해 다양한 전자기기 활용도 된다.

3열 시트는 성인 남성이 앉아도 답답함이 없는데, 머리 공간과 다리 공간이 여유롭다. 뿐만 아니라 USB 포트, 컵홀더, 송풍구까지 갖추고 있다. 형식적인 3열시트가 아니라 성인 탑승까지 고려한 3열시트를 넣은 것.

선루프 면적도 넓다. 스카이스케이프(SkyScape)라는 명칭으로 불리는데, 2개의 패널로 구성된 대형 파노라믹 선루프를 통해 모든 좌석에서 채광을 즐길 수 있다.

소소하게 달라진 부분도 있다. 계기판에 8인치 디스플레이를 넣은 것. 테마 변경도 가능하다. 하지만 표시되는 정보가 전기형과 같다. 디스플레이를 썼지만 색다른 효과나 컨텐츠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기어레버 디자인도 변경됐다. 새롭게 보타이 로고를 넣고 레버 상단에 자리한 수동 변속 버튼을 토글 스위치 방식으로 바꿨다. 스마트폰 무선충전 패드 면적도 넓어져 6.7인치 이상의 스마트폰도 충전할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공조장치는 만족감이 높다. 겉보기에는 올드해 보이지만 무선으로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를 사용할 수 있어 편의성이 좋다. 인포테인먼트 반응 속도도 빠르다. 화려함은 부족해도 빠른 속도가 쾌적한 사용 환경을 만드는 것.

센터페시아 하단 공조장차 조절부도 편의성을 높여주는 요소다. 대형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 최신 모델들 상당수는 공조 조절 기능을 모니터 속에 넣어 버렸다. 한국처럼 기후 변화가 심한 환경에서는 공조 장차를 자주 조작하는데, 이때마다 수차례 터치를 반복해야 한다. 버튼을 통한 직관성이 매력이 된다는 것.

주행 성능 (Test Drive)

시동 버튼을 누른다. V6 3.6리터 자연흡기 엔진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엔진 코드명은 LFY. 2018년부터 탑재되고 있는데, 뿌리를 따라가면 2004년 캐딜락 CTS 때부터 탑재되기 시작했다. 사골이라고? 시간이 흐르면서 직분사 시스템과 경량화, 새로운 흡배기 시스템이 달렸고 실린더 헤드까지 싹 바꿨으니 틀만 과거 것일 뿐, 사실상 최신 엔진이다.

동력은 9단 변속기를 거쳐 노면까지 간다. 주행 질감은 느긋하고 여유롭다. 힘없이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엔진의 저회전 토크가 좋아 일상 주행 때 가볍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동력의 전달 감각과 승차감도 부드러움에 초점을 맞춘다. 대배기량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의 강점도 여기서 나온다. 출력과 토크 변화가 크지 않고 부드럽게 성능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터보 엔진은 힘이 뛰어날지 몰라도 토크가 급변해 탑승자들이 불쾌한 승차감을 경험할 수 있다. 타호, 서버번,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6.2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속도로에 올랐다. 드디어(?)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이 없다. GM은 차로 중앙 유지 기능 대신 슈퍼크루즈를 탑재한다. 매우 진보한 ADAS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 기능을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슈퍼크루즈를 쓸 수 없으니 최신 국산 준중형 세단에도 있는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이 빠진 모양새가 된 것이다. GM은 아시아 기준 슈퍼 크루즈 도입 1순위를 중국으로 설정하고 준비 중이다. 다음은 한국? 일본? 빠른 시일내 한국에 도입되길 바란다.

고속 주행 안정감은 좋다. 시속 100km로 주행해도 60~70km/h 전후로 달리는 것 같다. 속도를 많이 높여도 불안감이 없으며 스티어링 휠의 보정 없이 직선 주행이 잘됐다. 올해 페이스리프트 된 현대 팰리세이드는 서스펜션을 부드럽게 풀었는데, 그 이후 직선 주행이 안된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좌우로 스티어링휠을 보정해 줘야 한다는 것. 차선 중앙 유지 기능이 있으니 괜찮다고? 기본을 중심에 두고 부가 기능을 따져야 한다. 당신의 애인이 (사실은) 못 생겼는데, 화장으로 위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분이 어떨까? 물론 꾸미는 것도 능력이긴 하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엔진회전수가 5000rpm 이상 넘자 숨겨 놨던 힘을 방출하기라도 하듯 시원스런 가속감을 전달한다. 고회전 영역에서의 엔진 회전 질감도 매끄럽다. 자동 모드로 달릴 때는 6700rpm을 전후해 변속하는데, 수동모드를 쓰면 최대 7200rpm 내외까지 회전시킬 수 있다. 시속 170~180km/h까지 부담 없는 가속이 이뤄지는데, 그 이상에 이르면 속도 상승폭이 줄어 든다.

트래버스는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7.76초만에 도달했다. 전기형 모델이 7.82초였으니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참고로 현대 신형 팰리세이드 3.8 모델이 8.15초를 기록했으며, 지프 그랜드체로키 L은 8.77초만에 100km/h에 도달했다. 가솔린 터보 엔진을 쓴 포드 익스플로러를 제외하면 자연흡기 모델 중에서 가장 빠른 성능이다.

빠른 가속은 트래버스의 매력 중 일부다. 그보다 캠핑족들을 위한 견인 기능이 눈길을 끈다.

순정으로 트레일러 히치 리시버와 커넥터가 갖춰진다. 이를 위해 차체 보강도 이뤄져 있다. 애초에 견인을 위한 설계가 된 것. 무거운 트레일러 등을 끌면 엔진과 변속기에 부담이 커지는데, 이를 막아주는 헤비듀티 쿨링 시스템도 탑재됐다. 내구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최대 견인중량은 2.2톤이다. 물론 팰리세이드도 가능은 한데, 기본 견인 용량이 750kg로 많이 부족하다. 옵션으로 160만원을 추가해야 견인용량이 2톤까지 늘어난다.

트래버스는 토우/홀 모드를 통해 변속 패턴과 전후륜 토크 배분, 스로틀 민감도를 최적화시킬 수도 있다. 견인을 하다 보면 말을 타 듯 꿀렁거리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트래버스는 견인 중에도 좋은 승차감을 유지할 수 있다.

스웨이 컨트롤 기능도 있다. 견인 때 횡풍(측면 바람)이 불 때, 불규칙한 도로를 달리면 트레일러가 흔들리는데, 상당히 위험한 움직임이 생긴다. 처음에는 살짝 구불거리지만 갈수록 흔들림이 커져 나중에 전복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방지해줄 수 있는 기능이 스웨이 컨트롤(Trailer Sway Control)이다.

제동 성능도 보자. 트래버스는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41.47m를 이동했다. 제대로 브레이크 길들이기가 이뤄지지 않은 신차여서 최적화 된 성능이 아니었다. 이 영향으로 테스트가 반복되며 최대 43m대까지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전기형 모델 테스트 때는 정상 컨디션이었는데, 이때 제동거리가 39m대였고, 그 성능이 꾸준히 지속되는 모습을 보였다. 같은 이유로 이번 모델도 길들이기 후 40m 미만 성능을 꾸준히 이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트래버스의 주행 감각은 여유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엔진 반응도 느긋하며 변속기도 승차감 중심으로 여유롭게 움직인다. 서스펜션도 2~3열 탑승자에게 좋은 점수를 따기에 충분하다. 여러모로 다이내믹함과 거리감이 있다.

스티어링휠의 록투록(끝에서 끝까지 돌릴 때) 3회전이 넘는다.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R-EPS를 사용한다) 정지상태에서 조작 때 조금 힘이 들어간다.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반응성으로 튜닝했지만 주행밸런스는 적당히 잘 맞췄다. 큰 차체 때문에 움직임이 조금 둔해도 운전자가 요구하는 궤도를 정확히 따라 돈다. 부드러운 서스펜션이지만 차체 무게가 한쪽으로 쏠린 후 불필요한 움직임 없이 안정적인 지지 능력을 보인다. 하중이 넘어간 상황에서 꿀렁거림이 없다는 얘기다. 둔하지만 운전자를 불안하게 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

안정화가 잘되어 있어 차체자세제어장치의 개입도 늦은 편이다. 부가 전자장비 없이도 위험한 움직임이 만들어지지 않게 하고, 이후 필요할 때만 자세제어장치를 개입시킨다. 일반적인 SUV는 전복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차체자세제어장치 개입을 빠르게 한다. 하지만 트래버스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에 두고 운전자가 최대한 차를 다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확실히 섀시 완성도는 높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쉐보레 트래버스. 역시 동급 경쟁모델 대비 나은 성능이 돋보였다. 3년 전에는 트래버스가 우수해도 팰리세이드의 압승이 예상됐다. 그도 그럴 것이 트림에 따라 1500~2000만원 정도 저렴한 가격을 갖췄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났고 트래버스가 갖고 있던 ‘가격’이라는 단점을 팰리세이드의 가격 인상이 희석시켰다. 서스펜션 튜닝의 부작용으로 똑바로 달리기 힘들다는 약점도 보였다.

남은 트래버스의 약점은 차로 중앙유지 기능과 타사보다 작은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및 자잘한 기능으로 축소됐다. 대신 뛰어난 승차감과 주행 질감, 튼실한 견인 관련 기능으로 실구매자들을 유혹하는 중이다.

구매 가이드 (Buyer's guide)

우리 팀은 프리미어 트림을 추천한다. 트래버스의 트림은 기본형 LT 레더 프리미엄, RS, 프리미어, 하이컨트리로 이뤄지며, 스페셜 에디션인 레드라인으로 나뉜다.

칭찬할 부분은 안전사양을 나누고 이상한 옵션을 둬서 상급 트림으로 유도하지 않았다는 것. 그때문에 구성이 무난한 LT 레더 프리미엄 트림만 선택해도 훌륭하다.

RS 트림을 택하면 휠과 금속장식을 포함한 모든 부분이 블랙컬러로 통일된다. 최상급 하이컨트리 트림은 전용 휠, 전용 그릴과 레터링 등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실내에 스웨이드 소재가 추가되며, 3열시트를 전동으로 조작할 수 있다. 옵션으로 추가되는 선루프도 기본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가격이 많이 오르기 때문에 우리 팀이 추천할 대상은 아니다.

프리미어 트림은 구성이 좋다. 계기판에 디스플레이가 추가되고 통풍시트도 탑재된다. 전동식 리프트게이트도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외적인 변화로 차체 주위를 둘러싼 플라스틱 패널이 외관 색상과 동일하게 마감되며 곳곳에 크롬 장식이 추가되는 등의 고급화도 진행되다. 하위 트림과 다른 외관 및 구성, 상급 트림과 큰 차이 없는 상품성을 갖추면서 중간 트림 정도의 가격을 요구하는 것이 프리미어 트림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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