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에너지 스토리지, 커패시터가 배터리를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2.11.1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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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위스의 한 업체가 EV 에너지 스토리지로 개선된 성능의 울트라 커패시터를 제안했다. 분명 장점이 있어 보이지만 배터리와는 또 다른 치명적 단점들도 보인다.

전기차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사람들의 궁금증도 내연기관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예를 들면 내연기관 시절 우리는 한 번 주유에 몇 km를 달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았다. 반면 전기차에서는 이런 부분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편 전기차의 효율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심이 덜한 편이다. 1kWh당 몇 km를 달리는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렇게 전기차 시대로 옮겨오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자동차의 핵심 동력원인 모터보다 에너지 저장장치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왜냐하면 거기에 스트레스의 원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 거의 모든 종류의 전기차는 단 하나의 에너지 스토리지 솔루션을 사용하고 있다. 바로 배터리다.

물론 배터리 방식과 현재 기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대부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충전과 방전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스위스의 한 업체가 배터리 대신 EV 에너지 스토리지로 하이브리드 울트라 커패시터를 제안했다. 대체 뭐가 다른 것일까? 일단 이름은 거창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업체가 제안하는 것은 커패시터의 일종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업체들이 제안했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분명 커패시터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일단 배터리와는 충전, 방전의 원리가 다른데, 배터리는 전해액과 양극재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적 반응에서 전기 에너지를 저장하거나 방전하는데 반해, 커패시터는 정전기장을 이용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정전기장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장치다. 이론적으로 커패시터가 가진 매력적인 장점이 있는데, 이 장점을 이용하면 지금 전기차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인 충전 속도 문제는 단번에 해결될 수 있다.

우선 열화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이 더딘 편이다. 보통 리튬이온 배터리 팩은 1,000~1,200 사이클을 한계로 보고 있으며 이후부터는 SOH가 점차 떨어진다. 반면 울트라 커패시터는 이론적으로 50만번에서 100만번까지도 충전 및 방전이 가능하다. 관리만 잘 한다면 반영구적 사용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정도라면 거의 연료탱크나 다름없는 수명이다. 구멍이 나기 전까지는 영원히 쓸 수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큰 장점은 에너지 저장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이 빠르다는 것이다. 용량에 따라 다르긴 하나, 대략 1분 이내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주유 속도보다 더 빠른 셈이다. 배터리의 화학적 반응을 유도하는 시간과는 아예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충전을 역순으로 생각하면 방전 속도 및 용량도 다르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기 에너지 방출에는 저항이 가장 큰 걸림돌인데, 울트라커패시터는 내부 저항이 아주 낮은 수준이라 빠른 속도의 방전도 가능하다.

화학 반응이 아니라는 점에서 계절의 영향도 거의 받지 않는다. 물론 커패시터 내부에도 전해액은 있지만, 일반 배터리에서 사용하는 전해액과 다르기도 하며, 충, 방전 방식도 달라서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에너지 저장 및 방출에는 큰 문제가 없다. 이렇게 두고 보면 제조사들이 커패시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리튬 이온 배터리가 가진 모든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는 매우 이상적인 솔루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제조사들이 커패시터를 그저 EV 회로 또는 각 모듈에 사용되는 하나의 부품 정도로만 사용하는 이유는 이 장점을 무색하게 하는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에너지 저장 효율이 낮다는 점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EV에 리튬 이온 배터리가 쓰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에너지 밀도가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위스의 Sech SA는 자신들이 개발한 울트라 커패시터가 기존 대비 뛰어난 에너지 밀도를 갖고 있다 소개했다. 그런데 이 수치가 다소 실망스럽다. 1kg 당 77Wh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반면 리튬 이온 배터리의 경우 1kg 당 최대 265Wh의 에너지 밀도를 보인다. 거의 3배 이상에 달하는 수치다. 달리 말하면 약 400km 가량 달릴 수 있는 EV의 배터리를 커패시터로 교환 할 경우 주행 거리는 160km대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주행거리를 동일한 조건으로 맞출 경우 커패시터 팩의 용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같은 크기라면 도심 주행용 단거리 시티카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치명적 단점은 충전속도가 빠른 대신 이 정도 용량을 1분만에 충전하려면 전력량이 엄청나야 한다는 뜻이다. 대략 350kW급은 되어야 1분이라는 속도에 도달할 수 있는데, 현재 한국만 하더라도 350kW급 충전기는 매우 드물다. (급속 충전기는 대체로 95kW가 일반적이다.)

물론 800만km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아주 매력적이지만, 커패시터 역시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EV 보급 장벽을 돌파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다수의 제조사들이 배터리 내재화를 하나 둘 포기하고 있을 만큼 리튬 이온 배터리의 개발, 생산도 무척이나 까다롭지만, 그 대안으로 떠오른 커패시터 역시 명백한 한계점을 갖고 있음이 틀림없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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