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600km 이상 EV 주행 거리는 고려하지 않는다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1.10.0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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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들은 여전히 EV의 주행거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의외로 BMW는 주행거리를 600km 이상 늘이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 EV가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이 관심있게 관찰하는 수치는 ‘한 번 충전으로 몇 km나 달릴 수 있는가?’이다. 가령 아이오닉 5와 EV6의 발표된 자료를 나란히 두고 왜 주행거리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사정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처럼 주행거리에 민감한 이유는 역시나 충전 시간에 대한 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흡사 스마트폰 혹은 기타 스마트 기기들이 매번 새로운 버전을 발표할 때마다 브랜드 역사상 가장 긴 배터리 사용량임을 강조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주목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실제로 한번 충전 만으로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여전히 스마트폰 연속 사용시간 그리고 EV의 주행거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제조사들도 매번 새로운 EV를 출시 할 때마다 한 번 충전으로 몇 km나 달릴 수 있는지를 매우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BMW는 주행거리 연장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BMW i4 프로젝트를 진행한 데이비드 페루피노에 따르면 한 번 충전으로 600km 이상의 거리를 달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전했다.

“총 주행거리 1,000km라는 목표는 우리가 설정한 목표와 다릅니다. 우리는 600km 내외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의 경우 매일 약 100km 가량을 주행할 수 있습니다.”

현재 판매중인 BMW i4 혹은 iX의 주행거리는 실제로 590km 가량으로 이들의 주장처럼 600km 내외로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 전에 먼저 주행거리의 연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가장 손쉽게 주행거리를 연장하는 방법은 배터리 사이즈를 키우는 것이다. 더 커진 배터리라면 주행거리는 간단히 늘어난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배터리의 증가가 주행거리의 증가와 정비례 관계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무게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단순히 배터리 사이즈만 키우는 것만으로는 기대했던 수준의 주행거리 연장을 실현하기 어렵다.

게다가 현재 배터리 수급 상태 및 생산 능력으로 봤을 때 배터리 사이즈가 커지면 커질수록 자동차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비싸질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보조금 지급이 종료된 이후 EV 판매량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단순히 배터리 사이즈를 늘여 주행거리를 연장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무의미한 결정이다.

여기에 BMW는 또 하나의 이유를 들었다. 다름아닌 충전 환경이다. 배터리 사이즈가 커지면 커질수록 충전 시간은 더 늘어난다. 이는 매우 단순한 원리다. 항아리의 크기는 커졌는데, 쏟아붓는 물줄기가 그대로라면 완전히 채우는데 걸리는 시간은 당연히 더 늘어난다. 현재 BMW는 200kW DC 고속 충전기를 기준으로 약 31분 가량 충전했을 때,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EV를 충전해 본 경험자라면 알고 있겠지만, 공급 전력은 충전기마다 전부 다르다. 운이 좋다면 200kW급 고속 충전기와 만나게 되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같은 기종의 충전기라도 75kW급 전력만을 공급할 때도 있다. 이러면 당연히 목표한 시간보다 더 많은 충전 시간이 필요해진다.

“배터리 기술의 이점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공 충전 네트워크의 발전 속도입니다.”

따라서 BMW가 현재 개발, 시판하는 EV들은 위에서 언급한 이유를 근거로 최적화된 배터리 용량을 갖고 있으며 600km 내외의 주행거리는 가장 이상적인 주행거리라는 것이 BMW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자동차의 가격, 배터리의 무게에 따른 효율 그리고 최적화된 충전 시간 등을 모두 고려한 판단이라는 것이 BMW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게 들린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잘 관찰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심지어 내연기관에 연료를 보충하는 것도 꽤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 한 번에 가득 주유하고 연료 보충 경고등이 들어올 때까지 주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 않은가? 물론 일부 특별한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의 경우 잦은 주유소 방문이 번거로워 연료 탱크 용량이 더 커지기를 바라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정한 기준치 이하로 기름이 떨어질 경우 지정된 용량만큼 주유하고 다시 주행하기를 반복한다.

물론 EV를 둘러싼 충전 환경이 주유소만큼 충분치 않기 때문에 주행거리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익숙해지면 결국 주행거리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적당한 사이즈의 배터리는 과도한 자원의 사용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만약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EV를 충분히 경험하게 된다면 주행거리 연장에 대한 기대나 집착도 많이 사라질 것이라 기대된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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