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가 만든 전기차, 무엇이 다른가?

메르세데스-벤츠는 전기차 시장 진입에 늦었다. 물론 벤츠에서는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벤츠 역사 중 전기차 관련 기술 개발을 이미 수십 년부터 해왔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지만 ‘현재 양산 전기차’라는 기준에서 바라보면 분명 늦게 시장에 진출했음이 확실하다.

첫 전기차인 EQC를 내놨을 때도 다른 브랜드들이 전기차를 하나둘씩 내놓은 시점이라 마지못해 내놓은 느낌도 들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도 아닌 GLC를 기반에 두고 전기차로 개조한 모델이기에 그러한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벤츠는 당장 전기차를 내놓기보다 큰 그림을 먼저 그린 후 전기차를 내놓는 모습이다. 당장 한중일 등 주요 배터리 업체에 손을 빌리기보다 자체적인 배터리 양산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희토류 공급에 유리한 부지에 배터리 생산 공장 설립 계획까지 세웠다. 새로운 자동차 생산 공장은 친환경 에너지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도록 했으며,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충전소 확보를 위해 다양한 제조사와 함께 협업하고 있는데, 기반을 다지고 차량을 만들어내는 부분이 테슬라와 유사하다.

이렇게 판을 깔고 난 뒤 무서운 속도로 새로운 전기차들을 내놓고 있다. 벌써 EQC, EQV, EQA, EQB, EQS까지 내놨고 EQE와 EQS SUV, 여기에 다양한 AMG 모델과 마이바흐 버전까지 출시를 앞두고 개발 중이다. 전기차에 올인했다고 하는 GM? 아직 다양한 전기차가 나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오히려 포드가 머스탱 마하-E와 F-150 라이트닝을 내놓으며 선수를 친 상황이다. 누구보다 전기차에 열중하고 있는 폭스바겐도 ID.3, ID.4, ID.6 정도만 내놨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자. 벤츠가 전기차 진입에 늦은 것은 맞지만 누구보다 빠르며 구체적으로 계획을 실현해 가고 있다. 마치 벤츠는 전기차에 관심 없다는 세간의 말들을 쏙 들어가게 만들려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만난 EQA를 보자. 벤츠의 전기차 중 입문형 모델 역할을 한다. 프리미엄 브랜드 중 입문형 모델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브랜드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소비자 마음을 사로잡아야 시간이 흘러도 자사 제품을 구입하는 ‘충성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

아직은 호불호가 갈리는 전기차다. 그러니 EQA가 짊어지어야 하는 무게는 더 크다. 완성도가 관건이라는 것.

국내 사양은 EQA 250. 190마력에 해당하는 140kW급 모터를 달았는데, 38.2kgf·m의 최대 토크를 가진다. 1개의 모터가 앞바퀴만 굴리는 방식이다.

배터리 자체 용량은 80kWh 수준이다. 다시 실제 가용 배터리 용량은 66.5kWh 수준. 약 15% 정도는 버퍼로 남겨둔 것이다. 포르쉐 타이칸도 배터리에 10% 수준의 버퍼 용량을 두고 있는데, 벤츠가 보다 보수적인 모습이다. 누군가는 ‘테슬라는 5% 미만인데!’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제조사의 철학 차이다.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인지 조금은 도전적으로 갈지 여부는 제조사의 재량이라는 것. 대신 벤츠 전기차는 배터리에 구멍을 뚫고 과충전 과방전을 오가는 한편 전기 충격 등 다양한 안전 테스트를 진행해 보다 안전하게 접근하려 했다. 자칫 잘못하다 문제가 나면 이미지 손상이 커지기 때문이다.

배터리 용량이 어찌 됐건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1회 충전으로 얼마나 달릴 수 있는지 여부다. EQA 250의 국내 인증 주행거리는 306km 수준. 해외에서는 WLTP 기준 426km를 인증받았건만 한국으로 오니 30% 가까이 죽었다. 그래도 210km 인증을 받은 아우디 e-트론도 있으니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EQA는 ‘나는 완충하면 400km 넘게 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였다. 100% 충전 상태에서 주행 가능 거리가 427km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주행거리가 과장으로 표기하진 않는 것 같다. 100km 가까이 달렸지만 300km 이상 주행할 수 있다고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것은 에너지 회수 부분이다. 최신 소프트웨어 버전의 테슬라 모델은 에너지 회수를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떼도 바로 강한 회생 제동이 작동한다. 오토파일럿을 실행시키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속도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면 여지없이 회생 제동을 실시한다. 심한 경우 가속제동 가속제동을 반복하며 울렁거리는 승차감을 만들어낼 정도.

하지만 EQC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EQA는 관성주행을 하는 코스팅과 에너지 회수를 적절한 수준에서 해준다. 무작정 에너지 회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사각이 심하지 않은 내리막길 같은 구간에서는 관성 주행을 통해 배터리를 소모하지 않고 먼 거리를 이동하게 돕는다. 또한 에너지 회수를 해야 하는 구간에서는 강한 제동을 연상시킬 정도로 회생 제동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상당히 매끄럽고 고급스럽게 진행된다.

패들을 활용해 에너지 회수 정도를 결정할 수도 있다. D--는 가속페달만으로 가속과 감속 모두 가능한 원페달 드라이빙을, D-는 큰 에너지 회수를, D는 일반적인 내연기관 수준으로 에너지를 회수해 준다. D+에서는 회생 없이 관성 주행을 할 수 있다. 현대차가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통해 도입한 방식인데, 벤츠에서도 이를 응용해 비슷한 개념을 쓴다.

단순히 승차감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를 회수하는 양 자체도 140kW로 상당하다. 그러니까 190마력의 출력을 발휘해 바퀴를 굴리고, 같은 출력으로 에너지를 회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에너지 회수만큼 중요한 것은 충전이다. EQA는 최대 100kW 충전을 지원한다. 누군가는 ‘겨우?’라고 말할 것이다. 테슬라는 250kW, 현대 아이오닉 5는 350kW급으로 충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최고 속도와 평균속도의 관계와 유사하다. 250kW나 350kW로 0%에서 100%까지 쭉 그 전력으로 충전하면 매우 이상적이다. 하지만 이 정도 출력으로 배터리를 충전시킬 수 있는 구간이 매우 제한적이다. KTX를 타도 300km 이상 달릴 수 있는 구간이 제한적이라고 이야기하면 비유가 적절할까? 초기엔 최대한의 전력으로 밀어 넣지만 이후 50% 또는 80% 구간에 이르면 충전 속도가 크게 떨어진다. 또, 이 정도 급속충전을 지원하는 충전기 자체도 드물게 설치돼 있다.

그래서 벤츠는 평균 충전 속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QA는 100kW, EQS는 200kW 충전을 지원한다. 이들의 특징은 80% 이후에도 최대한 빠른 충전을 이어간다는 것. 한마디로 배터리 충전에 따른 충전 속도 하락폭을 최소화시키는 전략이다. 이미 EQS는 테슬라 모델 S 플래드보다 빠른 충전이 가능하다는 테스트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고 충전 출력도 중요하지만 평균 충전 출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는 예다.

EQA는 50kW 짜리 고속도로 고속 충전소에서 충전율 95% 상태에서도 40kW 이상의 출력으로 충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100kW 고속 충전기에서는 평균 70kW 이상 출력을 꾸준히 유지했다. 덕분에 완충에 소요되는 시간이 짧다고 느낀다. 최고 충전 출력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평균 충전 출력이 높은 쪽이 유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기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에어컨이다. 벤츠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동일한 에어컨 성능을 발휘한다. 전기차는 히터보다 에어컨의 전력 사용량이 큰 만큼 에어컨 성능을 낮추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벤츠는 이 부분에서 타협하지 않았다.

EQA의 에어컨은 확실히 시원했다. 어쩌다 보니 에어컨 성능까지 강조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지만 시대가 바뀐다고 자사의 철학을 바꿔 타협하지 않는 모습은 칭찬할 만하다.

이제 주행거리 부분을 보자. 국내에서 306km 인증을 받은 EQA. 아마 EQA의 성능을 마음대로 꺼내 써야 이 정도 주행거리를 보일 것이다.

인증 주행거리는 길지만 달리자마자 금방 바닥을 보인 전기차가 있다. 테슬라 모델 3 퍼포먼스다. 반대로 인증 주행거리는 짧지만 편하게 달려도 배터리가 쉽게 닳지 않은 모델도 있는데, 포르쉐 타이칸과 이번 EQA가 그랬다.

주행거리 뻥튀기다 아니다 여부를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행거리를 소극적으로 발표한 만큼, 적어도 타이칸과 EQA의 주행거리가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팀이 다양한 환경에서 테스트한 결과 EQA는 편하게 주행해도 350km 이상, 신경 써 주행하면 최대 400km 이상이 가능했다. 물론 전력을 0%까지 소진하며 시험하지는 않았지만. 참고로 우리 팀은 충전소까지의 이동거리를 30~40km 정도 남겨두는 것을 추천한다. 충전소로 이동했는데, 충전기의 고장, 또는 다른 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부득이 다른 충전소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적어도 30~40km 거리를 백업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EQA의 주행 가능 거리는 대략 350~360km 내외가 된다.

벤츠의 입문형 전기차. 그러나 입문형 답지 않은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조용하다. 승차감도 좋다. 벤츠에서 느낄 수 있는 고급스러움을 EQA에서도 느낄 수 있다. 실제 80km/h 주행 환경에서 실내 정숙성은 58.5dBA를 보였다. 컴팩트 SUV로는 수준급 정숙성에 해당한다.

벤츠에서는 고급스러운 승차감과 정숙성을 위해 많은 부분을 개선했다고 강조한다. 여기저기 댐퍼를 추가하고 에어컨 컴프레서를 격리시키거나 1단 기어를 개선하고 부싱과 각종 부품을 바꿨다고 말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괜히 벤츠에서 이러한 부분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전기차에서 느낄 수 없는 정숙한 환경과 좋은 승차감을 전달해 줬기 때문이다. 통상 일부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는 뭔가 경직된 차체 느낌으로 승차감이 희생되는 경우가 있다. 대중 브랜드로 가면 그 특성이 더 진해진다. 그러나 EQA는 고급차의 일원임을 분명히 했다.

덕분에 장거리 이동이 편했다.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승차감, 모터 특유의 넉넉한 최대 토크가 운전 스트레스도 줄였다. 여기에 차간 거리와 차로 유지 기능 등을 지원하는 드라이빙 어시스턴스 패키지(Driving Assistant Package)가 한 번 더 운전 피로도를 낮춘다.

190마력과 38.2kgf·m의 토크를 발휘하는 모터는 EQA를 제법 가볍게 움직이게 만들어준다. 특히 순간적인 가속감이 좋다. 요즘 내연기관 차는 모두 터보차저를 사용해 가속페달 반응이 느리다 보니 전기차만의 운전 재미가 부각된다. 물론 내연기관차에서 막 옮겨 타면 어색함이 느껴지긴 하겠지만.

시험 결과 EQA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8.23초 만에 가속되는 성능을 보였다. 제조사 발표 기록이 8.9초였는데 보다 좋은 성능을 발휘해 준 것. BMW i3(6.95초)나 쉐보레 볼트 EV(7.1초)보다 느리긴 했지만 일상 용도로 사용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힘이다.

고속 시험 구간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계기판 기준 163km/h에서 속도가 제한된다. 벤츠답게 고속 안정감도 좋았다. 일반적인 벤츠는 200km/h 이상에서도 수준급 고속 안정감을 보여주는데 160km/h 구간에서 제한이 걸려있으니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도 있는데, 타이어였다. 타이어는 브리지스톤의 T005를 사용하는데, 벤츠 OE(original equipment) 타이어를 뜻하는 ‘MO’마크가 붙어있다. EQA 전용으로 개발된 T005라는 뜻이다. 사이즈는 235/55 R18.

전기차에 특화된 저저항 기술과 고중량 대응이 특징이다. 그런데 접지 성능을 많이 포기한 듯하다. 종그립을 확인하는 제동 테스트에서도, 횡그립을 확인하는 핸들링 테스트에서도 썩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먼저 100km/h의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최단거리는 43.7m 수준이다. 벤츠 하면 대부분 35~36m 대를 기록하지만 EQA만은 달랐다. 예상과 달리 많이 밀려나는 모습에 처음에는 노면 상태가 나빴는지 확인했을 정도.

핸들링 자체는 좋았다. 스티어링 조작에 따른 민첩한 움직임도 그랬지만 균형감이 좋았다. 기본적인 한계 특성은 언더스티어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일정 수준 뉴트럴 한 성향을 보이려 노력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서스펜션도 부드러운 것치고는 주행과 승차감 사이서 균형을 잘 잡았다. 물론 급격한 스티어링 조작으로 주행 균형을 깨버리면 오버스티어 특성이 나타나려 하지만 이내 ESP가 불안정한 차체 모습을 제어하고 있다. 또한 100~110km/h 내외의 환경에서 갑작스러운 차선 변경을 시험했을 때도 ESP의 안정적인 개입을 느낄 수 있었다.

유일하게 걸린 것은 타이어 성능이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저저항 타이어 특성이 코너링이나 제동에서 빠른 한계를 맞이하게 만든다. 향후 타이어 하나만 바꿔줘도 EQA는 대폭 향상된 성능을 보여줄 것이다. 참고로 애프터마켓용으로 출시된 브리지스톤 T005A는 매우 좋은 성능을 낸다.

메르세데스-벤츠 EQA. 근래 접한 전기차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배터리 충전을 비롯해 관리, 에너지 회수 등이 스펙보다 체감적으로 더 좋게 느껴졌다. 승차감, 정숙성, 성능, 각종 편의 및 안전장비들도 아쉬움이 나오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EQA를 접한다면 충분히 벤츠 전기차에 호감을 표할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엔트리급 모델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

물론 5990만 원이라는 가격은 너무 속 보이긴 한다. 6천만 원 미만부터 보조금 100%가 지급되니 딱 10만 원 모자란 6천만 원으로 맞춘 것이다. 국가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을 받으면 5천만 원 초반 가격에 EQA를 구입할 수 있다. 애초에 가격을 200만 원 정도 낮춰 발표했다면 앞자리가 4로 바뀔 수도 있었는데… 콧대 높은 벤츠라 그랬을까?

EQC를 통해 다시금 벤츠 전기차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EQA는 ‘역시 벤츠가 만들면 다르다’는 말이 나올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여전히 대중 브랜드와의 갭을 보여주고 있는 벤츠다. 입문형이 이 정도인데, 기함급 모델인 EQS는 어느 정도일까? 얼마나 기대감을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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