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브랜드 입문형 트림의 정석

자동차 회사는 이미지를 높여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볼륨 모델을 팔아 돈을 번다. 5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 M5 혹은 M550i처럼 멋지고 강력한 모델은 소비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으며 흔히 말하는 ‘드림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들을 동경한 소비자들이 실제 5시리즈를 구입할 수 있게 됐을 때 고민에 빠진다. 현실적인 고민들이다.

성능 좋아봤자 출퇴근만 할 텐데… 배기량이 크니 세금도 많이 내고 연비도 나쁘겠지. 타이어나 오일 교체에도 돈 많이 들 거야. 스포츠 서스펜션 들어가 봤자 아이들이나 어르신들 승차감 나쁘다며 싫어하시겠지 등등이 이에 속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자금은 제한적이지만 그 안에서 가장 좋은 차를 사고 싶은 것은 모든 소비자들의 기본 바람이다. 합리적인 가격을 가지면서 평소 ‘로망’으로 꼽던 꿈의 차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것. 이것이 520i를 많이 팔리게 만드는 이유다.

비유를 BMW 5시리즈로 했지만 벤츠건 아우디건 렉서스건 모두 같다. 그래서 프리미엄 브랜드는 자사 라인업 중 볼륨이 되는 엔트리 트림 운영에 신경 쓴다. 아무리 엔트리 트림이라고 해도 대중 브랜드 모델보다 비싸고, 소비자들은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한다. 쉽게 말해 520i에서 540i 급 구성을 원한다는 것. 접근성이 좋은 만큼 많은 자사 상품을 소비자들이 경험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실망을 하면 이미지가 무너지는데, 소비자는 다시 그 브랜드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된다. 한번 무너진 이미지를 원상 복귀 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프리미엄 브랜드 내에서 가장 많이 팔 가능성이 높지만 위험부담도 큰 것이 엔트리 트림의 특징이다. 하지만 이런 부담을 안고도 보란 듯이 성공적인 상품성을 만든 차들이 몇 대 있는데, 그중 하나가 520i 럭셔리 라인이다.

디자인은 살짝 심심해 보인다. 그동안 M 스포츠 패키지가 적용된 5시리즈를 너무 많이 봐온 것이 원인일 것이다. 멋지고 젊고 스포티해 보이는 측면서 살짝 부족해 보이긴 한다. 좋게 말하자면 차분하고 중후해 보인다.

휠 디자인과 브레이크에서도 차이가 난다. 불필요하게 크고 넓은 타이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앞뒤에 같은 크기의 타이어를 끼웠다. 엔트리 트림이지만 듀얼 머플러로 멋도 냈다. 머플러 개수로 차별하는 치사함(?)도 없다.

실내 구성도 칭찬하고 싶다. 기본적인 구성 자체가 좋기 때문이다. 시트 구성은 동급 최고 수준이다. 럼버서포트, 사이드 볼스터, 쿠션 익스텐션, 2단계 조절이 가능한 등받이가 탑재된다.

E60 시절 그렇게 욕먹던 5시리즈의 시트와 크게 다르다. 가죽 소재도 부드럽고 박음질 장식에 파이핑까지 더해졌다. 헤드레스트에는 부드러운 쿠션이 갖춰졌으며, 항공기식으로 양 측면 각도 조절도 된다. 메모기 기능은 2인까지 저장한다.

이것이 정녕 엔트리 트림의 시트가 맞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통풍이나 마사지 기능만 빠졌을 뿐 기능상으로 7시리즈 부럽지 않은 구성이다. 럼버 서포트조차 없던 과거의 5시리즈. 이후 ‘BMW=안 좋은 시트’라는 인식이 순식간에 퍼졌다. 그런 BMW가 이제는 동급에서 가장 좋은 시트를 제공하고 있다. 시트 구성 좋기로 유명한 볼보의 엔트리 트림인 모멘텀(Momentum) 시트는 520i 럭셔리 라인에 미치지 못한다.

대시보드까지 부드러운 소재와 리얼 스티칭으로 고급스러움을 살렸다. 스티어링 휠도 열선을 지원한다. ‘벤츠 보고 있나?’

12.3인치 크기의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모니터, 하위 모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대형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있다.

센터페시아의 공조장치 구성도 동일하며,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도 갖춰졌다. 내비게이션 성능도 좋아졌다. 물론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대비 정보량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스마트폰 연동 기능이 있지 않은가?

소비자들이 만족해할 부분은 ADAS 일 것이다. 정차 및 재출발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와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을 비롯해 계기판에서 주변 상황도 보여준다. 운전자 안면을 인식하는 센서도 있다. 기본형 모델이지만 최상급 모델과 동일한 안전 사양이 탑재됐다는 점이 인상 깊다. 그동안 전 사양 동일한 안전 사양이 탑재됐다는 점은 볼보만의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였다. 이제는 BMW도 이 노선을 취하고 있다. 박수받아 마땅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속 및 감속, 변속까지 모두 해주는 자동 주차 기능을 비롯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후진 어시스트 기능도 좋은 구성이다. 평상시엔 쓸모없어 보이지만 외길에 들어서 후진할 때 유용하다. 에코 모드에서 중립 주행을 지원하며 트렁크도 전동으로 여닫힌다. 소소하지만 오토홀드 기능이나 스피드 리미트 기능도 있다. 어지간한 편의 기능이 충실하게 탑재됐다는 것.

물론 몇몇 빠진 기능도 있다.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앞 좌석 통풍 기능이 없다.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이외에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 대신 후방 카메라만 탑재된다. 뒷좌석 독립 공조장치(컨트롤러)도 삭제됐으며, 사운드 시스템도 기본 사양이다. 스티어링 휠의 패들도 없다. 하지만 일상용 세단이니 통풍시트 이외에 크게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일부 구성도 좋아졌다.

사실 이 정도만 봐도 충분히 좋다. 엔트리 트림임에도 구성이 워낙 좋아 굳이 530i를 선택해야 할까 싶을 정도다. 본격적인 주행 테스트를 하기도 전에 합격 점수 정도는 먹고 들어간 것이다.

이제 주행을 해보자. 시동을 걸어 정숙성을 확인해본다. 처음 엔진이 돌기 시작할 때 의외로 스포티한 배기음을 만들어낸다. 오호 그래도 한 성격한다는 건가? 이후 바로 잠잠해지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한 결과 35.0dBA을 보였다. 상급 모델인 530i나 6기통 엔진이 탑재된 640i와 동일한 정숙성이다. 일반적으로 시동이 꺼진 환경에서 실내 정숙성이 32.0dBA 전후이니 얼마나 조용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80km/h 주행 환경에서는 56.5dBA를 보였다. 후륜에 275mm 타이어가 장착되는 530i xDrive M 스포츠 패키지의 57.0dBA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정숙성을 보여줬다.

일상적인 환경에서 주행을 할 때 감각은 고급스러움이 살아난다. 부드럽게 움직이고 부드럽게 멈춰주며, 이 차의 출력과 토크 여부와 상관없이 힘 부족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힘 부족이 체감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면 운전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하위 모델이 그렇다면 더더욱 상급 모델에 대한 생각이 절실해질 것이다. 하지만 520i와 함께 주행을 한다면 530i나 540i 등 상급 모델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힘 부족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에코 프로 모드를 설정하면 다소 답답해진다. BMW가 잘 하는 것이 에코 프로 모드에서도 힘 부족함 없이 편안한 주행을 하면서 효율도 높이 올리는 것이다. 타사 대비 체감적인 출력 하락폭도 적다. 하지만 520i에서는 제한적인 출력 때문인지 이 부분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답답하다고 느낄 소비자도 있을 듯하다. 이에 노멀 모드 주행을 추천한다.

승차감도 4륜 모델과 후륜 모델 간 차이가 난다. 4륜 모델이 부드러운 승차감을 가졌다면 후륜 모델에는 조금 더 단단한 성격이 가미된다. 스프링 자체의 성격 차이가 대폭 나는 것은 아니지만 쇼크가 발생했을 때 댐퍼에서 걸러주는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이는 전기형(페이스리프트 이전) 모델에서도 동일했다. 하체가 너무 출렁거리기만 하면 불안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잡아주는 느낌이 드니 더 든든하게 느껴진다.

고속도로에 오른다. 고속 안정감도 좋다. 국산차도, 일본 차도, 영국 차도 고속 안정감을 높였지만 여전히 독일 브랜드를 벤치마크할 수밖에 없다. 더 뛰어나니까. 속도가 높아져도 실내는 여유롭기만 하다. 심지어 정숙하다.

엔진은 184마력과 29.6kgf·m 수준의 힘을 가진다. 190마력으로 만들고 토크의 앞자리를 3까지 끌어올렸으면 좋았을 텐데. 현재 BMW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늘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내연기관 엔진에 대한 열정을 조금 더 키워주면 좋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수치적 성능일 뿐 힘 부족은 느껴지지 않는다. 강력하게 가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드럽게 속도계 바늘이 쉬지 않고 상승한다. 고속에 올라 앞자리 숫자를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시간을 측정한 결과 7.72초를 기록했다. 공식 기록이 7.8초이니 이보다 좋은 성능을 발휘한 것.

충분히 좋은 성능이다. 물론 조금은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며 운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일상 생활 영역에서 충분히 좋은 성능을 발휘해 주기 때문에 큰 불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 성능은 고급유가 아닌 일반유 사용 환경에서 나왔다. BMW는 과거 캐딜락과 비교했을 때도 일반유 대응 성능 발휘 능력이 좋았었다. 권장 사양은 고급유지만 일반유를 사용해도 성능 하락은 크지 않다는 것. 물론 열관리를 비롯해 저회전 노킹 증상인 LSPI(Low Speed Pre Ignition), 불완전 연소에 의한 카본 축적 등 2차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제조사가 고급유 사용을 권장하면 고급유를 잘 이용해 주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좋다.

와인딩 로드에서 간단한 주행 성능 테스트를 진행한다. 스포츠 모드로 설정 후 변속기도 S에 설정했다. 스티어링 패들이 없기 때문에 기어 레버를 사용해 수동 변속을 해야 한다. 조금 불편하다. 물론 S 모드만으로 똑똑하게 알아서 잘 변속해 주긴 하지만.

기어를 내리고 올리는 속도가 상급 사양 대비 조금 느리다. 520i과 523d에는 일반 8단 변속기가 탑재됐기 때문. 530i부터 스포츠 8단 변속기가 얹힌다. 아무래도 변속기에서 느껴지는 자극적 감각이 부족하다. 그래도 허망하게 느리지는 않아 실망이 크진 않다. BMW는 여기에 약간의 꼼수를 썼는데, 계기판 속 바늘의 움직임을 매우 빠르게 설정해 체감상 성능 저하를 막도록 했다.

서스펜션 셋업은 잘 됐다. 부드러우면서도 잡아줄 때는 확실히 잘 잡아준다. 롤이 커지는가 싶지만 일정 수준이 되면 차체가 허둥 되지 못하게 단단히 지탱하는 모습도 보인다. 흔히 4륜 구동 모델이 코너에서 안정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5시리즈는 4륜보다 후륜 모델에서 심적으로 안정감을 더 많이 받게 해준다.

코너에서 출렁거리고 작은 움직임이 지속되면 구동방식에 관계없이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5시리즈의 4륜 모델이 약간의 불만을 남겼다면 역시 후륜 모델은 전통 그대로의 BMW 느낌을 다 보여준다.

스티어 성향은 언더스티어가 기본. 스티어링을 끝에서 끝까지 돌려보면 3회전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차량의 움직임은 빠릿하게 이뤄진다. 속도를 더 높이면 주행 안전장치가 개입하는데, 운전에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 안정적, 센스 있게 잘 잡아주는 성격이었다.

후륜 모델이라고 미끄러지거나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차량의 밸런스가 좋을 뿐만 아니라 주행 안전장치의 작동 세련미도 상당하다. 국산 대중 브랜드들이 이 기술을 쓰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조금 넘지만 BMW는 DSC 이전, ASC 이름으로 이 기술을 써왔다. 2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물론 눈이 내렸을 때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지만 일반 주행 중 후륜이 미끄러지면서 사고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도 날아갔다면? 그건 필요 이상의 과속이었겠지.

타이어는 콘티넨탈의 에코컨택6를 쓴다. 245mm 너비다. 친환경 타이어 성격을 가지면서 컴포트한 주행 성능이 강화됐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는 법. 1회 정도의 급제동 성능은 좋지만 제동이 반복되면 한계를 보인다. 520i는 100km/h에서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 37.67m 안에서 멈췄다. 하지만 이후부터 약 1m씩 제동거리가 증가하더니 최장거리 40.4m를 기록했다. 평균 제동거리는 39.22m. 아마도 시험이 더 반복됐다면 더 늘어난 제동거리를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이점으로 득한 부분은 연비다. 적정한 성능을 발휘하는 가솔린 터보 엔진과 경량화 기술, 회생제동 기술과 중립 주행 기술 등을 활용해 고속도로에서 17~18km/L 수준의 효율을 보였다. 국산 중형~준중형급 연비와 유사한 것. 68리터의 연료탱크 덕분에 한번 주유할 때 꽤 많은 금액이 지출되지만 이후 연료 게이지는 잘 내려가지 않아 체감 연비 만족감이 커진다.

520i의 테스트가 끝난 후 한 줄 평을 낸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프리미엄 브랜드 입문형 트림의 정석’이라고.

물론 미미하게라도 아쉬움은 있다. 오디오 성능이 조금 더 부족하다거나 통풍 시트가 없다는 점. 변속기가 조금 더 느려지는 것, 힘이 조금 더 낮은 것 정도다. 하지만 그 몇 가지 구성 때문에 530i로 가야 할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이다. 530i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용이면 520i로도 충분하다는 것.

프리미엄 브랜드로써 보여줘야 하는 고급스럽고 안정적인 주행감각, 최신 ADAS 기술, 각종 고급 소재를 사용한 인테리어 마감, 대형 화면과 제스처 컨트롤과 같은 신기한 기능들, BMW다움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주행성능 등 엔트리(입문) 트림이지만 이것이 5시리즈라는 것을 충분히 잘 보여주고 있다.

가격도 매력적이다. 6300만 원이 넘는 가격은 다소 비싸 보이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5천만 원 후반 내외에서 520i를 만난다. 국산 준대형 세단도 이런저런 옵션을 추가하면 4천만 원이 넘는 시대다. 일부 옵션에서 우세할 수는 없지만 차량이 보여주는 주행 질감은 따라 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옵션을 탈 것인가? 고급차를 탈것인가? 잘 생각해 보자. 그 화려한 옵션 중에 내가 쓰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본질이란 단어를 알고 나면 답은 보인다.

전 세대 520d는 소위 ‘BMW 엠블럼에 묻힌 깡통차’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도로에서 520i를 본다면 동급 최고의 만족감을 전해주는 차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BMW 코리아 상품 기획팀이 나름대로 잘 준비했다. 근데 다음 연식에서 통풍 시트를 기대해도 될까? 설마 이것이 530i로 유도하는 핵심 요소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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