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지엠만 모르는 자동차 시장 상식

  • 기자명 김기태 PD
  • 입력 2019.07.10 14:32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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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올 신차들이 승부처를 찾는다면?

한국지엠에게 다시 빛이 보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쉽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국지엠을 책임지는 카허 카젬 사장도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지금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간의 실적을 보자. 판매량은 예전만 못하고 브랜드를 지지하던 소비자들도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다. 한국지엠에게 '한국 시장 철수'라는 꼬리표는 아픈 상처 중 하나다. 이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키웠고, 판매량에도 악영향을 줬다.

준중형 세단 '크루즈'의 실패. 이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당초 크루즈는 독일 오펠이 만들어 수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국지엠은 무리수를 두며 군산 공장에서 크루즈 생산을 감행했다.

독일 오펠이 만들고 수입해 판매되는 크루즈, 한국지엠 군산 공장이 만들어 내수 시장에 판매하는 크루즈. 똑같은 차다. 하지만 이 차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다르다. 독일 브랜드가 만들어 수입한 크루즈는 쉐보레 마크를 붙인 수입차가 된다. 2천만 원대 중반이라도 독일 차라는 일종의 프리미엄이 있으니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진 크루즈는 '국산차'로 경쟁 차인 현대 아반떼, 기아 K3 등과 가격으로 승부를 벌어야 한다. 오펠이 개발한 크루즈는 완성도 측면에서 경쟁차들을 앞섰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완성도가 아닌 가격이다. 특히나 첫차로 소형차 준중형차 소비자들에게 자동차의 주행성능, 감각, 완성도는 그리 중요한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가격이었다. 전 세대 크루즈(J300)는 한국지엠의 주도하에 개발, 군산 공장에서 생산돼 전 세계 시장으로 팔려 나갔다. 한국지엠은 수출 물량으로 수익을 창출했고, 내수 판매는 그저 부업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군산 공장에서 생산된 크루즈는 순수 내수시장을 위한 것이었고, 시설 투자비 등의 수익 보전을 위해 차량 가격 자체를 높여버린 것이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가격대가 맞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다른 예를 보자. BMW코리아는 지난 2017년 신형 5시리즈를 내놨다. 그동안 남발하던 할인 정책을 제한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하지만 실적은 저조했고, 결국 BMW코리아는 다시금 대대적인 할인 잔치를 벌였다.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기대 가격보다 비쌀 때 판매가 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또한 올해 내놓은 3시리즈도 고가격 정책으로 판매량이 다소 주춤한 상황이다.

폭스바겐 게이트를 떠올려보자. 업계에 폭풍우가 몰아칠 당시, 폭스바겐은 단 한대의 차도 판매하지 못하고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폭스바겐코리아가 시행한 할인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고 줄을 섰다. 각종 조작이나 브랜드 이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격, 그것 하나가 모든 차를 매진 대열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가격에 민감한 우리 시장이다.

쌍용차의 구세주 티볼리를 보자. 쌍용차는 기본 트림의 수동변속기 모델 가격을 내세우며 가격 저렴한 경쟁력 있는 차로 포장했다. 하지만 티볼리를 저렴하다고 보는 업계 전문가는 없다. 특히나 초기형의 완성도는 양산차라 말하기 힘들 정도였다. 더욱이 가성비 좋다는 기본 트림의 수동 변속기 모델은 구입할 수도 없는 차였다. 기자가 만난 과거 쌍용차 임원은 티볼리는 당시 쌍용차의 전략에 의해 가성비 좋은 차로 포장됐지만 사실은 결코 저렴하지 않은 차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티볼리는 성공했다.

저렴한, 가성비 좋은, 이와 같은 이미지가 그 차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다.

과거 한국지엠은 현대차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차를 팔았다. 하지만 지금 일부 상품은 현대차 대비 떨어지는 구성을 갖고도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 물론 글로벌 지엠과의 협업, R&D의 투자가 차량 가격을 인상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를 차량 한대 한대에 부과하기 보다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세우고, 이를 통한 판매량으로 승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두 가지 차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고가 정책을 쓰는 A라는 차의 마진은 100만 원이다. 반면 B 차의 마진은 60만 원에 불과하다.

한 놈만 걸리라는 마음으로 한대 팔아 100만 원 남기기 보다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B 차를 2대 팔아 120만 원의 수익을 득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착한 가격 내세운 브랜드라는 소비자들의 지지는 덤이다.

유명 연예인 앞세운 TV 광고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는 브랜드, 가성비 좋은 차라는 이미지가 앞날을 밝게 만들 수 있다.

쉐보레 카마로는 가성비 좋은 스포츠카다. 미국보다 저렴한 가격을 갖는 것은 물론 경쟁차 포드 머스탱 보다 1천만 원 이상 저렴한 가격에 팔린다.

한국지엠은 트래버스와 콜로라도를 수입해 팔 계획이다. 이들은 수입차다. 카마로의 사례처럼 수긍할 수 있는 가격을 내세우며 이미지를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마침 현대차가 팰리세이드를 내놓고 선전하고 있다. 기본 트림은 3천만 원대 중반이지만 옵션 넣다 보면 4천만 원대 중반도 순식간이다. 생각보다 좋은 상황 아닌가?

GM을 포함한 포드, FCA그룹은 픽업트럭 및 대형 SUV 분야에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오랜 차 만들기 경험은 경쟁력이 된다. 이제 가격만 남았다.

출시 당시 이미지가 그 차의 평생을 좌우한다. 그리고 한번 구축된 좋은 이미지가 그 차의 꾸준한 판매량을 견인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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