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Review] 자연흡기의 한계를 넘어, 가변 흡기 시스템

  • 기자명 뉴스팀
  • 입력 2017.02.2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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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의 성능과 효율 모두를 높이기 위해 터보차저의 장착은 당연시 되고 있다. 과거에는 6리터 이상 대배기량을 가져야만 발휘할 수 있었던 출력은 이제 터보차저만 있으면 4리터 정도만으로 쉽게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일부 스포츠카는 여전히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고수한다. 즉각적인 반응과 높은 엔진 회전수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아직 터보차저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 자체가 갖는 ‘부의 상징’ 역시 차별화 포인트다.

반면 자연흡기 엔진이 갖는 한계는 명확하다. 빠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터보 엔진과 비교하면 정체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페라리가 자연흡기 엔진의 한계를 다시 한번 끌어올릴 기술을 갖고 왔다. 가변형 에어 인테이크(Variable Geometry Intake tracts) 기술이다.

일명 가변 흡기 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기술은 페라리가 과거부터 사용해왔던 기술이다. 최근에는 최고성능 모델인 라페라리와 얼마 전 공개한 812 슈퍼패스트에도 적용됐다. 라페라리는 V12 6.3리터 엔진으로 800마력과 71.4kg.m의 토크를, 812는 V12 6.5리터 엔진으로 800마력과 73.3kg.m의 토크를 만들어낸다. 터보엔진으로도 쉽지 않은 800마력이란 수치를 자연흡기엔진으로 뿜어내는 것이다.

사실 가변 흡기 시스템은 꽤나 오래된 기술이다. 1958년 벤츠에서 특허를 획득한 이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사실상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사용했다. 현대, 기아, 대우차의 다양한 모델에도 이 기술이 탑재됐었다.

가변 흡기 시스템은 이름 그대로 흡기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이다. 엔진은 흡입-압축-폭발-배기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운동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더 많은 공기를 흡입해야 더 큰 압축과 폭발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당연히 큰 폭발력은 엔진을 더욱 힘있게 만들어주며, 작은 폭발력은 힘이 약한 엔진을 만든다. 이와 같이 실린더 내에 실제로 얼마만큼의 공기가 들어가는 정도를 표현한 것이 체적효율이다.

터보차저는 실린더 내에 공기를 강제로 밀어 넣어주는 장치다. 체적효율이 높은 만큼 발휘할 수 있는 힘도 크다. 하지만 자연흡기 엔진은 공기를 강제로 밀어 넣어줄 수 있는 장치가 없다. 공기를 강제로 밀어 넣지 못한다면 최대한 공기의 성질을 이용해 최적의 성능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가변 흡기 시스템은 공기가 실린더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의 길이를 늘였다 줄였다를 반복한다.

실린더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크게 3가지가 꼽힌다. 첫번째로 와류가 생긴다. 자동차 외관에서 와류가 발생하면 공기저항을 증가시키는 요소지만 엔진 안에서 와류가 발생하면 공기와 연료가 보다 잘 섞일 수 있다. 특히 실린더 내부에 들어온 이후에도 적정 수준의 와류가 발생해야 연료와 공기가 서로 잘 섞이면서 이상적인 연소를 이끌어낼 수 있다.

둘째는 관성이 생긴다. 공기 역시 한번 움직이면 운동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려는 관성이 발생한다. 셋째, 이 관성을 통해 계속 전진하던 공기들이 엔진의 밸브가 닫히면서 갑자기 막히게 되면 갈 곳을 잃은 공기들이 서로 뭉치기 시작한다. 공기의 압력과 밀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다시 밸브가 열리고 공기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뭉쳐있는 공기 이후에 압력이 낮아지는 구간이 발생한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면서 공기의 맥동이 발생한다.

엔진이 천천히 돈다고 가정하자. 상대적으로 공기의 흐름도 여유롭다. 하지만 엔진 실린더에 있어 공기는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많이 들어오는 것이 좋다. 체적효율이 높아야 성능과 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에어필터를 지난 후 실린더 내부까지 들어오는 통로가 길수록 좋다. 가속할 수 있는 길이 길수록 공기가 흐르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자동차로 10m만 가속했을 때와 100m를 가속했을 때 속도 차이를 생각하면 쉽다. 그만큼 그만큼 밸브가 열렸을 때 공기가 우르르 들어갈 수 있고, 이것은 체적효율이 높아짐을 뜻한다. 또, 통로가 길어질수록 공기의 와류도 한층 강력해지면서 연소 효율이 높아진다.

반대로 엔진이 빠르게 도는 상황을 가정하자. 밸브는 순식간에 열리고 닫히며, 실린더 내부도 흡입하고 압축하며 폭발시키고 배출시키느라 바쁘다. 공기가 더 빨리 들어왔다가 나가도 시원찮은 상황에서 공기가 도착하기까지 아직도 십만리나 남았다면 속이 터질 것이다. 차라리 이때는 통로가 짧아 공기가 조금이라도 빨리 들어갔다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 효율 향상에 좋다.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된 환경에서 최적의 효율을 갖도록 개발된 기술이 바로 가변 흡기 시스템이다.

가변흡기 시스템의 종류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과거에 가장 많이 활용했던 방식은 2가지 흡기관을 사용하는 것이다. 저속 환경에서는 길이가 긴 통로를 따라 공기가 이동한다. 이후 엔진회전수가 빨라지면 통로 중간 밸브가 열리면서 지름길이 만들어진다. 긴 통로를 돌지 않고 빠른 길로 바로 통과하는 것이다.

공기의 유량의 변화를 주는 방식도 있다. 1차선 도로보다 2차선 도로가 더 많은 통행이 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저회전 영역에서는 1개의 공기통로만 사용해 흡입시 공기의 가속도를 부추기며, 고회전 영역은 2개의 공기통로를 개방해 더 많은 공기가 손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

서지탱크에 밸브를 달아 공기 길을 제어하는 방식도 많이 사용됐다. 쉽게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생각하면 된다. 4차선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톨게이트에 진입하면 10차선 이상으로 차선이 넓어진다. 이중 각각의 차선에 격벽이 설치되어있어 다른 차선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 흡기관이 길어지는 효과다. 반대로 차선에 격벽이 사라지면서 얼마든지 다른 차선으로 이동이 가능한 상황이 흡기관이 짧아지는 효과다. 이는 유효 흡기관의 길이를 이용한 원리다.

페라리가 최근 도입한 가변 흡기 시스템은 흡기관이 스스로 늘어났다 줄었다가 가능한 방식이다. 본래 이 기술은 F1을 통해 도입된 기술이지만 현재는 금지됐으며, 페라리가 이를 응용해 양산차에 적용한 것이다. 라페라리의 경우 5,750rpm에 이를 때까지 흡기관이 길어진 상태를 유지한다.

이후 5,750rpm부터 6,000rpm을 넘어서는 순간까지 흡기관이 43% 짧아진다. 이후 다시 원래 상태로 길어진 상태가 된다. 흡기관이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공기의 공명 및 맥동 현상을 유발하기 위함이다. 이후 7,000rpm 부터 8,250rpm까지 흡기관은 최대한 짧아진다. 흡기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8,250rpm 이상부터 다시 흡기관은 55% 정도만 짧아진 상태로 소폭 길어진다.

페라리의 가변 흡기 시스템은 단순히 공기의 진로만 바꿨던 기존 방식보다 적극적으로 공기의 흐름까지 제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흡기 통로의 길이를 원하는 만큼 조절 할 수 있어 가장 높은 효율을 끌어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라페라리의 엔진은 4,000~8,000rpm 구간의 출력 및 토크 증대 효과가 이뤄졌다.

터보엔진과 하이브리드 기술의 발달로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은 조금은 시대에 뒤쳐진 취급을 받고 있다. 어떠한 혁신 없이 현재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견해도 많다. 하지만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 역시 더디지만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는 한계를 뛰어넘은 자연흡기 엔진을 만날 수 있지 않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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