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Review] 나 대신 사고를 당해주는 존재들, 더미

  • 기자명 뉴스팀
  • 입력 2014.07.2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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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8월 31일. 매리 워드(Mary Ward)라는 인물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는 칼 벤츠가 최초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선보이기 17년 전 상황. 다시 말하면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자동차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현 시대까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전세계 2천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동차가 갖춰야 할 제 1의 요소는 바로 안전이다. 안전하다는 전제를 만족해야 성능을 논하고 연비, 유지비용 등 나머지 경쟁력을 언급할 수 있다.

자동차를 안전하게 만들려면 다양한 실험을 하고, 여기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실험은 사람들이 직접 하기에는 너무나 큰 위험이 따른다. 때문에 사람 대신 사람과 비슷한 실험용 인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충돌실험용 측정장비를 흔히 더미(Dummy)라고 부르고 있다.

더미라는 것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차량을 분석하는 수준에서 연구가 진행됐다. 물론 사고 분석 연구는 현재도 진행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한 후이기 때문에 실제 충돌 과정을 추적할 수 없었다. 여기에 탑승자에게 가해지는 충격을 비롯해 다양한 응력과 변형에 대한 연구도 불가능 했다.

실제 충돌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인공적으로 만든 구조물 위에 차량을 올려 놓고 강제로 충돌 시키는 방법이 제안됐다. 문제는 충돌이 발생하는 차량에 누구도 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샌드백이나 상점에서 옷을 입혀놓은 마네킹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에서는 별다른 데이터를 확보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신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체를 활용하지만 생명과는 관계없는 무언가를 찾았고, 그 무언가는 시체가 거론됐다. 1930년대만 해도 대학교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자동차 충돌 실험은 시체를 활용하기도 했다.

시체를 활용한 충돌테스트는 실질적인 데이터를 확보해 보다 안전한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반대여론이 발생했음은 당연한 내용이었다. 여기에 실험에 사용하기 적합하도록 적당한 나이에 신체 훼손이 없는 시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동물이고, 이 동물 중에서 돼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동물을 사용하는 충돌실험은 1993년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인체를 대신하는 더미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다. 원래 더미는 항공산업에서 비행기 조종사의 긴급탈출용 사출 좌석 시험을 위해 앨더슨 연구소(Alderson Research Labs)가 개발했다. 시에라 샘(Sierra Sam)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더미는 자동차산업 전용으로 개조해 사용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자동차용 더미가 사용된 것은 VIP-50 시리즈부터다. 이 더미는 GM, 포드, 다임러에서 먼저 사용하면서 더미의 기준을 확립해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다임러는 더미를 오스카(Oskar)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이 유명하다.

1960년대 들어서 더미 사이즈 및 더미 측정방식 등이 다양화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 각각에 맞는 사이즈의 더미가 나왔고 유연한 관절기능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테스트 조건의 정확성 또한 지속적으로 개선됐다. 승객 역할을 하는 더미에 이어 보행자 역할의 더미가 나왔고, 특정 사고를 더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더미도 개발됐다.

1971년은 더미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하이브리드 I이 개발된 해다. 하이브리드 I은 남성 평균 신장과 체격, 몸무게 등을 일치시킨 초기 형태로, 머리와 가슴에 대한 반복적인 테스트가 가능했다. 이후 머리와 가슴뿐 아니라 무릎까지 반복적인 시험이 가능한 하이브리드Ⅱ가 개발됐다. 측정 범위가 확대되면서 하이브리드 II는 에어백 시험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자동차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은 하이브리드 III가 탄생했다. GM과 FTSS(First Technology Safety System)에 의해 개발된 하이브리드 Ⅲ는 머리, 목, 가슴, 대퇴골, 무릎, 경골, 발에 이르기까지 신체 각 부위와 이음새를 보다 정교하게 제작했다.

탑승자에게 가해지는 물리적인 힘을 측정하기 위해 가속도계와 역각센서가 사용되며, 무릎에 대한 각도 게이지와 머리에 대한 가속도 센서도 갖추고 있다. 이들 센서들은 30가지가 넘는 항목에 대한 데이터를 기록하고 데이터 레코더에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하이브리드 III의 기본적인 장점은 광범위한 용도와 부품들을 각각의 더미들끼리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결함이 있는 부품도 개별적으로 교체가 가능하다. 이런 특징 덕분에 더미의 수명은 일회용이 아니라 의외로 오래 살아간다.

가장 최근에 설계된 더미는 THOR(Test device for Human Occupant Restraint)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는다. 1994년 NHTSA에서 개발된 THOR는 생체 유사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됐다. 부상 정도와 관련된 다양한 측정 데이터들을 혼합해 계측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여기에 보다 친근한 디자인을 갖고 조립과 해체가 쉽도록 개발됐다.

더미는 사람은 아니지만 최대한 사람에 가깝게 만들어진다. 먼저 피부는 발포고무로 만들어 덮는다. 갈비뼈의 경우는 실제 뼈와 비슷한 탄성을 갖는 금속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또 머리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다. 재미있는 점은 더미를 구성하는 각 40여종의 부품들은 기계 명칭이 아니라 의학 용어를 사용해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미를 대할 때 있어서 만큼은 사람과 같게 생각하는 것이다.

센서는 신체 곳곳에 탑재된다. 가속도계, 로드 셀, 변위계 등 센서는 머리, 목, 가슴, 복부, 골반, 정강이 등에 설치되어있다. 복부에 센서를 장착해 임산부가 받는 충격도 측정할 수 있기도 하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더미는 아빠, 엄마 어린이 3명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임산부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더미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초창기 하이브리드 III 더미는 1가지 형태로만 제작됐었다.

더미를 분류할 때는 50분위 인간(50th percentile Human), 95분위 인간(95th percentile Human) 등 다소 생소한 이름을 사용한다.

앞의 숫자는 백분위를 나타낸다. 미국 평균 성인 100명을 기준으로 놓고 몇 번째에 해당하는지를 나타낸 것이다. 50분위 인간은 미국의 평균 성인 100명 중에서도 중간에 해당하는 크기로, 키 175cm, 몸무게 78kg인 평균체형을 갖는다. 큰형이라고 불리는 95분위 인간은 키 188cm에 몸무게가 101kg으로 육중한 덩치를 갖는다.

여성은 5분위 인간으로 분류된다. 키는 152cm, 몸무게는 54kg로 다소 아담한 체구다. 어린이 더미도 있다. 10살 어린이는 23.4kg, 6살 어린이는 20kg, 3살 어린이는 16.2kg의 몸무게를 갖는다.

신뢰성 높은 실험결과를 얻기 위해 더미들은 사용 전에 확인과정을 거친다. 먼저 측정값을 적절하게 설정하기 위해 하이브리드 III의 머리를 40cm 높이에서 기구 속으로 떨어뜨린다. 그런 다음 머리를 볼트로 고정시키고, 이어서 목 유연성을 확인하기 위해 잠시 가속했다가 급격하게 제동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후 어깨와 머리가 몸통에 연결되면 사전에 몸통을 실험기구 속에 넣고 추로 충격을 가해 가슴의 유연성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 자동차 사고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 과정 자체가 두들겨 맞는 것이다.

현재까지 더미와 관련된 기술은 다양하게 발전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더미는 더미일 뿐이다. 관절이나 근육, 힘줄, 인대, 뼈 등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을 더미에서는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만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토요타는 더미는 물론이고 가상 인체 컴퓨터 모형인 THUMS(Total Human Model for Safety)를 이용하고 있다. 1997년 개발을 시작해 2000년부터 상용화가 시작된 THUMS는 골격은 물론 내부 근육과 장기 등 신체의 모든 부분이 데이터로 만들어졌다.

THUMS를 사용하는 가상의 충돌실험 진행을 통해 더미에서 파악할 수 없었던 심층적인 부상 정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됐다. THUMS는 보행자나 다른 도로 사용자들의 부상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차체 구조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다.

지금도 더미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벽으로 돌진하는 자동차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더미가 측정하지 못했던 부분은 가상의 더미인 THUMS가 보완하고 있다. 만약 가상의 더미가 실제 인간과 완벽하게 동일한 결과값을 내놓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 더 이상 더미를 사용하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고, 덕분에 건강과 생명을 지켰으니 더미들은 충분히 은퇴할 자격이 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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