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중고 수입차 규제가 풀리면서 다양한 일본 중고차들이 수입되기 시작했다. 일본 내수차는 스티어링 휠(핸들)이 우측에 있다 보니 운전할 때 불편함이 따른다. 주차장이나 톨게이트만 지나도 불편을 느낀다. 때문에 일상용 차를 수입해서 탈 소비자는 없었다. 하지만 스포츠카 영역은 달랐다. 90년대 우리 시장을 주름잡던 것은 현대 티뷰론, 150~156마력 엔진을 가졌는데, 튜닝으로 출력을 높여도 200마력을 넘기 어려웠다. 1~2천만 원을 투자해 터보차저를 달아 출력을 높여도 고장 나기 일쑤. 처음 튜닝을 해서 시험 주행을 하다 엔진이 깨지는 경우도 있었다. 국산차 터보차저 튜닝이 안정화되기 시작한 것은 16bit ECU가 나오면서부터.

반면 일본 버블 경제 덕에 탄생한 스포츠카들은 달랐다. 일본 내수 법규로 출력이 280마력에 제한되었지만 기본 성능을 높여 놓은 덕분에 머플러 하나만 바꿔도 출력이 오르는 차들도 많았다.

중고차지만 인증 절차, 세금에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니 비용 부담은 컸지만 더 높은 출력을 보다 안정적인 환경 안에서 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이를 택하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체 자동차 시장을 보면 존재감이 적었다. 그래도 당시 국내 시장에서 이름을 날린 몇몇 차종이 있는데, 마쯔다 RX-7, 토요타 수프라, 닛산 실비아, GT-R 등이 대표적이다. 미쓰비시 3000GT(GTO)도 있었지만 무겁고 둔하다는 평이 많아 인기가 적었다.

이들에 대한 관심을 키운 계기가 생겼는데, 영화 ‘분노의 질주(Fast & Furious)’를 통해서다. 2001년 개봉한 영화로, 주인공인 폴 워커가 수프라를 운전했다. 이 수프라는 코드명 A80로 불리는 4세대 모델이다.

수프라의 역사는 토요타의 2도어 쿠페 셀리카에서 시작됐다. 셀리카는 4기통 엔진의 입문형 스포츠 쿠페였는데, 6기통 엔진을 달아 강력한 성능을 내도록 만든 것이 수프라다. 그중에서도 4세대 수프라가 가장 유명한데, 튜닝으로 1천 마력, 많게는 2천 마력을 넘나드는 튜닝카도 있었다. 여기서의 핵심은 엔진 블록이 강해 내구성이 좋았다는 것. 고출력을 받아주는 엔진 덕에 400m 드래그 레이스에서 5.9대 기록도 세웠다. 양산차와 튜닝카는 다르지만 슈퍼카 위에 있는 하이퍼카의 대표 주자, 부가티가 만든 1600마력짜리 시론이 400m를 9초 초반대에 끊으니 비교가 될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스포츠카의 맥이 끊어진다. 환경 규제가 이유다.

그렇게 오랜 시간 일본을 대표할 스포츠카는 나오지 않았다. 이후 카를로스 곤 (전)회장이 닛산 GT-R을 부활시키며 고성능 스포츠카의 부활을 알렸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혼다가 NSX를 내놓으며 맞불을 놨다. 하지만 토요타에겐 86뿐이었다. 재미난 모델이지만 200마력 내외 출력으로 고성능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잡긴 힘들었다.



이후 새로운 프로젝트가 발표된다. 토요타가 수프라를 부활시킨다는 것. 그것도 BMW가 만든 플랫폼을 통해서다. 토요타에겐 세계 최고의 하이브리드 기술이 있었고, BMW는 이 기술을 탐냈다. 반면 토요타는 BMW가 가진 직렬 6기통 3.0리터 엔진과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함 플랫폼이 필요했다. 그렇게 양사의 니즈가 맞아떨어졌고, 이에 수프라 재건 프로젝트는 급물살을 탄다.

토요타 수프라는 아키오 회장이 운전을 배우던 시절 이용했던 모델로도 유명하다. 아키오 회장은 직접 스티어링 휠(핸들)을 잡고 경기에도 출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사내에서 운영하는 ‘마스터 드라이브 라이센스’를 보유하고 있다. 쉽게 말해 수많은 토요타 테스트 드라이버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자격을 갖췄다는 얘기다. 5세대 수프라 데뷔 때 아키오 회장이 직접 나서며 ‘친구’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것도 자신의 젊은 날을 함께한 수프라의 추억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수프라는 BMW의 틀로 만든 5세대 모델이다. BMW의 로드스터 Z4(G29)를 바탕으로 쿠페화 된 것인데, 지향점에서 차이가 난다. BMW는 운전 재미를 추구한다. 빠르기를 추구한 것으로 알고 있는 소비자들도 많지만, 서킷 등에서 더 빠른 기록을 세운 것은 메르세데스-벤츠(AMG) 쪽이다. 하지만 카마니아들이 BMW에 환호하는 것은 운전 재미 때문. 최신 AMG 모델들이 달리는 기계의 모습이라면 BMW 모델은 운전자와 소통하는 재미난 친구 같다.

그런데 토요타 엔지니어, 개발에 참여한 가주 레이싱(GR / GAZOO Racing) 팀은 운전 재미를 놔두면서도 빠른 차를 원했다. BMW가 제공한 틀의 한계를 넘어선 순수한 스포츠카. 그것이 5세대 수프라다.

수프라의 생산은 오스트리아 그라츠 공장에서 이뤄진다. 토요타가 마그나 슈타이어에 위탁 생산을 의뢰해 생산된다. 마그나 슈타이어는 벤츠 E-클래스 4륜 구동(4Matic) 모델, BMW X3, 크라이슬러 300C, 푸조 RCZ, 애스턴 마틴 라피드, 미니(MINI)의 일부 모델을 만든 경험 많은 제조사다. 국산 브랜드인 현대, 기아차의 4륜 구동 시스템도 마그나가 제공한 것들이다.

수프라의 생산은 2019년부터 이뤄졌다. 그럼에도 2020년 1월에 한국 시장에 데뷔했다. 신차 인증에 수개월 이상 소요되는 실정을 감안하면 매우 서두른 것이다. 지난해(2020년) 수입된 수프라는 초기형으로 340마력 출력을 냈다. 하지만 더 많은 출력을 요구하는 시장 요구를 받아들여 2021년형부터는 387마력을 내도록 엔진을 업그레이드했다. BMW 엔진으로 이해하자면 40i(340마력) 엔진을 M40i(387마력) 급으로 업그레이드했다고 보면 된다. 오토뷰 팀이 만난 것도 387마력 버전.

디자인이 독특하다. 튜닝 부흥기의 일본차들을 보는 것 같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긴 하나 긍정적 측면이 많을 것이다. 이 디자인은 4세대 수프라의 이미지에 토요타의 전설, 2000GT 실루엣을 결합한 결과다.



측면 비율이 독특한데, 로드스터를 바탕으로 했기에 앞부분이 길고 뒷부분은 짧다. 그리고 FT-1 콘셉트 디자인을 최대한 살린 것도 특징이다.

전면부에서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공기흡입구, 그리고 엠블럼을 감싸지는 형상의 헤드램프다. 후면에는 트렁크 리드와 일체화된 스포일러가 있는데, 대형 스포일러를 상징으로 삼던 4세대 모델 대비 아쉬움으로 느껴진다.

과거엔 큰 사이즈의 스포일러를 쓰는 차들이 몇몇 있었는데, 셀리카의 고성능 GT4, 미쓰비시의 랜서 에볼루션, 수프라 등이 대표적이었다. 유행이었을까? 당시 국산 티뷰론도 대형 스포일러를 갖고 나왔었다. 스포일러가 보여주는 시각적 아쉬움은 있지만 다운포스 등의 기능성에서는 현재의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리고 범퍼에 있는 GR 엠블럼이 어디서 튜닝했는지 보여준다. 범퍼 하단에 보조 제동등은 F1 머신을 연상시키며, 대구경 머플러, 디퓨저 등으로 기능성과 멋을 채웠다.

그런데 말이다. 실내가 조금 심심하다. BMW Z4와 공유하는 영역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Z4와 유사해도 너무 유사하다. 버튼이나 다이얼은 아예 그대로 가져왔다. 스티어링 휠조차 신차의 느낌을 전하지 않는다. BMW 엠블럼을 떼고 토요타 색을 입힌 느낌? 이런 것들은 디스플레이나 iDrive 다이얼에서도 그대로 전해진다.

그래도 시트가 좋다. 일상 주행, 와인딩 로드 등에서도 몸을 잘 잡아준다. 다만 시트 백(등받이)을 세우는 운전자는 서킷 주행을 위해 헬멧을 쓸 때 자세가 불편하다 느낄 수도 있다.

나머지 기능을 보자. 그래도 최신 모델답게 일정 수준의 ADAS(운전자 보조 시스템)이 달려있다. 운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자전거까지 감지 가능한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사각 및 후측방 경고, 오토 하이빔도 지원한다. 다만 차로 유지 기능은 없다. 그러나 차량 콘셉트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수프라, 이게 얼마 만인가? 기자가 2002년 정도에 수프라 RZ를 만났으니 거의 20년 만에 만이다. 당시 타본 수프라는 자동 변속기 버전이었는데, 4단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 같지만 그때는 그랬다. 유사 시대를 살았던 911(993) 조차 4단 자동을 쓰던 시절이다. 출력은 280마력 내외였지만 두둑한 토크로 잘 밀고 갔던 기억이 있다. 다만 차체가 무거워 빠릿한 몸놀림은 없었다.

5세대 수프라에 오른다. 2시터 구조, 낮은 차체, 탑승 환경이 이상적이지는 않다. 이 모든 것이 성능을 위한 불편함이리라.

시동 버튼을 누르면 시원스럽게 배기 사운드가 뿜어진다. BMW 파워트레인을 공유했지만 전혀 다른 음색이다. 양산차 보다 튜닝카에 가까운 음색, 약간의 부밍음도 있다. 호불호가 갈릴 사운드다. 유럽차와 달리 저음을 많이 부각한 것인데, 과거 튜닝 좀 즐겼다면 매우 반길 사운드다. 반면 아크라포빅 같은 ’빠당빠당’ 거리는 유럽식 튜닝을 즐긴 마니아라면 아쉬움을 표할지도 모르겠다.

일상 주행 시험을 위해 도로에 나서는데, 서스펜션의 경직된 움직임을 보인다. 토요타는 조금 느슨한 셋업을 하는 것이 보통인데, 수프라는 대놓고 하드함을 보여준다. 서스펜션은 두 가지 모드로 제어되는데 노멀, 그리고 스포트로 나뉜다. 혹시 스포트 모드로 설정했나 싶었는데 노멀 모드였다. 기본 설정이 하드한 편이지만 상황에 따라 상하 움직임이 필요할 때는 나름대로의 탄력성을 보여준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측면으로 하중을 실어줄 때 일정 수준의 바디롤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승차감을 논하자면 나쁜 편이다.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승용차와 비교할 때 그렇다. 하지만 스포츠카의 범주로 놓고 본다면 조금 하드한 정도? 최근 스포츠카들이 편안한 고성능을 지향하는 GT화 되어가면서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다 보니 조금 더 하드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최근 테스트한 911 터보 S도 생각보다 부드러웠으니까. 즉, 수프라의 드라이버는 내가 무슨 차를 선택했는지 확실하게 인지해야 한다. 적어도 당신이 선택한 것은 빠르기를 지향하고 싶어 한 스포츠카다.

와인딩 로드를 달린다. 저속 코너가 많은 코스인데, 스포츠 모드로 바꾸니 빨라진 엔진의 반응과 변속기의 움직임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파워트레인이 BMW와 같은 성격이라 감흥이 크지 않았지만 탄탄하게 조여진 새시와 궁합을 맞추다 보니 만족도가 높아졌다.

스티어링 휠을 돌린다.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이 나오는데, 스티어링 휠을 끝에서 끝까지 돌릴 때 2바퀴만 돌아간다. 얼마나 타이트하게 조여진 스티어링 기어비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민감한 차체 반응에 주의할 필요가 있긴 하다. 얼마 안가 적응하겠지만.

기본 운동 특성은 약한 언더스티어, 하지만 뉴트럴에서 약한 오버를 지향한 셋업의 흔적이 보인다. 가속페달을 통해 균형을 제어할 수 있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다만 난이도 낮은 차가 아니라는 것은 기억하자. 제법 빠르게 달릴 때는 운전에 자신감을 만들어 주는데, 그 이상의 영역에 들어가면 양날의 검처럼 이빨을 드러내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다룰 수 있다면 빠르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면 충분히 차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좋다.

고속 주행에 도전한다. 시험 코스에서 달렸는데, 200km/h를 넘어서자 불안한 기색이 느껴진다. 프런트 축이 안정감을 전하지 못한다. 그 상태로 (속도계 미터상) 240km/h를 넘어섰는데, 자신이 없다. 생각보다 고속 주행 안정감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테스트와 촬영을 위해 한 번 더 고속 주회로를 달릴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안정감이 좋았다. 이유는 측면에서 불었던 바람. 측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체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0-200km/h 가속을 측정하던 팀 내 기자는 바람이 심할 때 180km/h 영역부터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바람이 잦아들거나 세지 않을 바람이 부는 정도면 수프라는 문제없이 질주해 나간다. 이는 탑스피드 영역인 260km/h(속도계 기준)까지 달릴 수 있었다.

토요타는 국내 최고 레이스인 슈퍼레이스에 바디를 제공한다. 그 덕분에 과거 보다 경기차(S6000급)의 랩타임이 더 빨라졌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낮아진 윈드실드 덕이다. 수프라의 윈드실드는 과거 캐딜락 때보다 많이 누워있다. 공기저항에 조금 더 유리하다. 이런 윈드실드를 위해 레이싱팀은 A 필러 일부를 잘라냈다고 한다. 또한 차체 크기도 약간 줄어 공지 저항 측면에서 이점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섀시 조율 노하우, 여기에 타이어 성능이 더 좋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속에서의 가속도 무난하다. 테스트하는 일반유를 먹은 탓에 제 성능을 다 내지 못했는데, 그래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가속 성능을 뽐냈다. 우리 팀이 테스트 테스트한 결과 수프라는 정지 상태서 100km/h까지 4.73초 만에 도달하는 성능을 보였다. 여기에 소요된 거리는 70.6m 정도. 제조사 발표 수치가 4.1초니 많이 부족하긴 하다. 아마도 고급 휘발유에 완전히 적응했다면 조금 더 빠른 가속 성능을 냈을 것이다. 부족하긴 했지만 5.0리터 엔진을 얹은 머스탱 GT와 유사한 기록이었으니 효율은 상당한 편이다. 참고로 0~150km/h까지는 9.37초, 0-200km/h 가속은 17.69초를 기록했다. 순수 가속도 중요하지만 빠른 엔진의 반응이 운전자를 더 즐겁게 한다.

제동 성능은 어떨까? 100km/h로 달리는 수프라는 최단 35.85m 안에 완벽히 정지할 수 있다. 반복된 제동으로 성능이 저하되어도 36.88m 안에 정지하는 능력을 뽐냈다. 최단과 최장거리 편차는 약 1m. 이 정도면 매우 좋은 제동 내구다. 스포츠카는 꾸준하게 가감속하는 환경을 만난다. 이때 브레이크에 대한 신뢰도가 낮으면 아무리 운전 잘하는 드라이버라도 자신감을 잃게 한다. 그리고 가속 페달을 밟는 시간을 줄여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수프라 운전자는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상과 와인딩 로드 그리고 고속주행, 만점은 아니어도 5점 만점에 4.5점은 줄 수 있겠다. 3.0리터 급 모델로는 수준급이며 핸들링도 생각보다 좋다. 마음에 드는 차다.

독일 브랜드의 기본기에 토요타 레이싱팀의 노하우가 더해진 탓일까? BMW 스포츠 모델 보다 순수 달리기 측면 만족도가 높았다.

자리를 옮겨 서킷에 왔다. 우리 팀과 협업하는 드라이버 중 한 명인 이원일 드라이버에게 스티어링 휠을 맡겼다. 지금은 프로로 활동하지만 아마추어 시절, 빗길에서 미끄러진 차를 컨트롤하며 드리프트 상태로 상대 차를 추월했던 것으로 유명한 선수다.

우리 팀은 이원일 선수를 좋아하는데, 숨김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도 일단 얼버무리듯 의견을 낸다. 이원일 드라이버는 확실한 부분, 확실하지 않거나 자신 없는 부분에 대해 딱 잘라서 말한다. 또 하나의 장점은 빠르다는 것. 많은 드라이버들이 있지만 레이싱 업계에서 인정받는 드라이버는 그리 많지 않다.

태백 스피드웨이를 달렸다. 단조로운 코스다. 노면도 거칠다. 이선수에 따르면 수프라는 계속 튀는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신경이 예민할 정도였단다. 그렇게 나온 랩타임은 1분 03초 77. 가장 빠른 기록이었는데, 가장 느린 랩타임과 비교해도 0.3초 내외 차이가 났을 뿐이다.



이 선수는 거친 노면과 하드한 서스펜션의 조화가 이상적이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서스펜션을 노멀로 돌리면 달라질까? 그 결과 1분 4초 이상의 기록을 냈다. 차중이 횡으로 쏠릴 때 바디롤이 많아지고 다시금 자리를 잡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이 이유였다.

만약 연료에 의한 엔진 컨디션이 극에 달하고, 노면에 대한 충분한 적응 시간이 있었다면 0.5~1초 정도는 당길 여지가 있어 보인다.

노면이 좋은 인제 스피디움, 영암 인터내셔널 서킷이었다면 더 좋은 기록을 냈을 것이다. 수프라는 많은 서킷을 달렸는데, 특히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깨끗한 노면에 맞춰진 서스펜션 셋업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수프라. 결론적으로 스포츠카였다. 슈퍼카조차 편해져 가는 시대, 이를 역행하는 모습이지만 순수 스포츠카의 혈통을 유지해 나간다는 점이 좋았다. 일부 마니아들은 순수 토요타의 기술이 아니라며 수프라의 존재를 부정한다.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기업들은 효율을 따진다. 수익성 적은 스포츠카 개발을 위해 많은 예산을 편성하다 아예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차가 탄생했다는 사실, 여기에 의미를 두자.

수프라 테스트와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는 길, 촬영 PD들은 저마다 수프라를 갖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재미를 알아버린 탓일까? 스포츠카 바이러스는 은근히 오래가는데…

수프라는 7천만 원대 중반에 팔린다. 싸지 않다. 하지만 비싸다고 말하기도 그렇다. 같은 플랫폼을 쓰는 BMW Z4 M40i가 9천만 원대에 팔리니까. 할인을 감안해도 1천만 원가량 차이가 난다. 물론 프리미엄 브랜드의 엠블럼 값도 있긴 하다. 여기에 오픈 에어링이란 덤도 제공된다. 그러나 더 빠르게, 더 퓨어하게 운전을 즐기고 싶은 운전자라면? 아마도 차액을 유류비, 타이어 값에 쏟아부을 것이다.

수프라의 단점? 아무래도 로드스터 기반이라 타고 내리기 불편하다. 디스플레이 모니터도 최신 BMW 것 대비 아쉽다. ADAS 채용은 좋지만 차선 중앙 유지 기능이 없다. 그러나 이 차에서 중요한 것은 스티어링 휠을 쥔 손, 그리고 예민한 엔진, 듬직하게 제어되는 브레이크를 다루기 위한 발, 그리고 윈드실드 앞 펼쳐진 코너를 바라보는 시선, 마지막으로 타이어의 미끄러짐과 차체의 요(yaw)를 느끼는 몸, 다시금 이것들과 일체화를 이루고 있는 차체의 조화가 아닐까 싶다.

수프라의 탄탄한 차체와 서스펜션은 387마력이란 힘을 부족하게 느끼게 한다. 더 강한 엔진을 요구하게 만드는 오버 스펙의 구성. 그것이 지금의 스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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