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선전포고, 국산차 시장까지 넘보나?

국내 수입차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잘 팔리는 브랜드는 국내 일부 제조사보다 많은 판매량도 낸다. 반면 부진한 브랜드는 한 달에 10여 대 안팎의 성적을 내기도 한다.

인기 있는 수입차 브랜드, 흔히 ‘독 3사’라고 불리는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가 꼽힌다. 이 3개 브랜드가 차지하는 수입차 시장 점유율만 60%에 이를 정도다. 나머지 20여 개 브랜드가 40%를 나눠 갖고 있다.

렉서스나 볼보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상황은 그나마 괜찮다. 튼튼한 마니아층을 거느린 지프도 웃음을 이어간다. 대당 수억 원대 럭셔리 & 슈퍼카 브랜드는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인데, 페라리는 수백 대의 대기 수요도 갖고 있다. 지금 차를 주문해도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

남는 것은 대중 브랜드들이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인기, 갈수록 경쟁력 높아지고 있는 국산차 사이에서 수입 대중 브랜드의 설자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국산차보다 비싸고 편의 및 안전장비는 부족한데 프리미엄 브랜드처럼 브랜드 밸류가 딱히 높은 것도 아니다. 상황 자체가 수입 대중 브랜드에 좋지 못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칼을 빼든 것은 폭스바겐이다. ‘3A’라는 이름의 전략을 발표한 것인데, 내용이 파격적으로 보인다. 3A는 부담 없는 가격(More Accessible), 합리적인 유지관리(More Affordable), 경쟁력 높은 편의 안전사양(More Advanced)을 뜻한다.

가격을 과거처럼 비싸게 부르고 할인을 많이 해주는 방법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가격을 낮춰 제시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에 앞으로 출시될 폭스바겐의 신차는 과거보다 저렴해진 가격을 갖게 될 예정. 이는 자동차의 잔존가치(중고차 가격 방어) 측면에서도 이점이 된다.

유지관리 부분도 바뀐다. 5년/15만 km의 보증 연장 프로그램에 사고 수리 케어 서비스, 블랙박스 장착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폭스바겐은 본토시장인 유럽에서 2년, 중국에서 3년 10만 km 보증을 실시한다. 미국에서도 4년 8만 km 보증을 내세운다. 그런데 한국을 위해 이 정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점이 눈에 띈다.

마지막 경쟁력은 편의 안전사양에 있다. 국산차에 뒤지지 않는 편의 안전사양을 갖추겠다는 것. 종합적으로 가격은 낮추고 보증기간을 늘려주면서 옵션은 더 풍부한 차를 팔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국내 수입차 시장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그리고 신형 티구안이 3A 전략을 처음 반영한 모델로 나왔다.

티구안 하면 두말할 것 없는 세계적인 인기 모델.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600만 대 이상 판매됐으며, 이제 골프와 폴로 다음으로 많이 팔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팔리는 것은 마찬가지. 굳이 가격 낮추고 보증기간을 연장해 주지 않아도 충분히 잘 팔릴 모델인데 이런 결정을 했다는 것에서 폭스바겐코리아의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이제 시장에서 이 전략이 먹히느냐가 중요하다.

신형 티구안은 2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각지고 무난하기만 했던 디자인을 세련된 모습으로 바꿨다. 새로운 눈매의 헤드램프에 IQ 라이트라는 이름의 매트릭스 LED도 넣었다. 반대 차로는 물론 선행차에게 눈부심을 주지 않으면서 밝은 전방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무난하기만 했던 범퍼 디자인도 보다 멋지게 디자인했다. 후면부 테일램프도 풀 LED 구성이다. 방향지시등에 순차 점등 효과까지 추가됐다.

실내 분위기도 달라졌다. 아쉬운 것은 디자인이 여전히 투박해 보인다는 것. 대시보드와 도어트림도 부드러운 소재로 감쌌고, 도어 하단 컵홀더도 플라스틱 소재 노출 없이 꼼꼼하게 마감했다. 투박하지 않고 고급스럽다는 것. 하지만 시각적 기준이 높은 국내 소비자들을 사로잡기에 살짝 부족해 보이는 경향이 있다. 국산차는 소재는 저렴한 것을 써도 멋지고 화려하게 꾸미는 재주가 있다. 폭스바겐은 그와 반대된 모습.

스티어링 휠에서 폭스바겐의 새로운 엠블럼도 볼 수 있다. 디스플레이 계기판에서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고 내비게이션이나 주행 안전장치 관련 정보를 큰 화면으로 볼 수 있게 꾸몄다.

센터페시아도 새로워졌는데, MIB3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탑재해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꾸미는 한편 제스처 컨트롤까지 지원한다. 공조장치도 터치식이다.

송풍 단계로 하나하나 누르기 않고 손가락으로 ‘쓰윽’하고 쓰는 방식으로 설정할 수 있다. 그래도 투박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철저하게 독일차 다운 실용성 중심의 구성.

시트는 메모리와 열선을 지원하는데, 통풍 기능이 빠졌다. 국내 소비자들은 통풍시트 선호도가 높다. 우리 팀은 매트릭스 LED의 가치를 높게 본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들 상당수는 통풍시트에 더 많은 점수를 줄 것이다.

나머지 구성은 좋다. 360도 전방위 카메라를 탑재됐는데, 단순 어라운드 뷰 이외에 3차원으로 주위 확인까지 가능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런 기능은 프리미엄 브랜드 중에서도 고가 트림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 자동 주차 기능도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사양이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데크도 갖췄다. 통풍시트만 제외하면 아쉬운 구석이 없다.

공간도 넉넉하다. 특히 2열 시트의 슬라이딩 범위가 꽤나 크다. 보다 넓은 트렁크를 갖춘 올스페이스 버전도 있지만 표준 모델도 공간을 유연하게 변화시켜 사용한다는 점이 좋다.

시동을 걸어 신형 티구안을 깨운다. 오랜만에 듣는 디젤엔진 소리다. 디젤로 큰코다친 폭스바겐인데 또 디젤엔진을 들고 왔다. ‘배짱이야?’라고 생각할 소비자들도 있겠지만 이번 디젤은 과거의 디젤과 다르다.

엔진 명칭은 EA288 evo다. 이 엔진의 가장 큰 특징은 배출가스 기준인 유로 6d 기준을 통과한다는 것. 실험실 속 결과가 아닌 실제 도로주행 배출가스 테스트에서도 유로 6d 보다 낮은 배출량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핵심은 새로운 후처리 시스템에 있다. 일반적으로 디젤엔진에서 나온 배출가스는 배출가스 재순환 장치 EGR, 산화 촉매 DOC, 미립자 필터 DPF, 요소수 촉매인 SCR까지 지난 후 머플러를 통해 대기 중으로 배출된다.

폭스바겐의 신형 디젤엔진은 DPF가 1차 SCR 촉매 역할까지 겸한다. 질소산화물을 1차로 줄여주는 것이다. 이후 엔진과 거리를 둔 차체 하부 쪽에서 SCR 촉매를 통해 질소산화물을 한 번 더 제거해 준다. 1회 제거만으로도 90% 이상의 질소산화물을 감소시키는 것이 가능한데 2번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요소수는 특성상 온도가 너무 낮으면 촉매 역할을 못하고 너무 뜨거우면 요소수가 증발하는 문제가 있다. 열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SCR 시스템에는 냉각 장치와 가열 장치 모두 갖춰지게 된다. 뜨거운 엔진열을 머금고 있는 DPF 부분에서 질소산화물을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은 분명 칭찬받을 내용이다.

폭스바겐은 디젤 엔진 때문에 정말 큰 곤욕을 치렀다. 그래도 다시 디젤을 내놓는 이유는 가솔린 엔진은 따라갈 수 없는 디젤만의 강점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내 차의 엔진에 뭐가 추가되고 배출가스가 얼마나 나오는지는 중요치 않다. 얼마나 힘 좋고 기름을 덜먹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폭스바겐의 신형 디젤엔진에 매력이 있긴 하다.

연비 경쟁력은 여전하다. 고속도로에서 주행한다면 마음 편히 20km/L 이상 볼 수 있다.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에 더없이 기특한 능력이다. 정체구간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12~15km/L를 오르내릴 뿐이다.

가속페달을 세심하게 조작해서가 아니다. 편하게 남들처럼 운전해도 연비가 잘 나온다. 정속 주행할 때만 높은 연비 기록하다가 가속페달 밟으면 바로 곤두박질치는 가솔린 터보 엔진과 다른 이점도 여기에 있다.

힘 좋고 연비까지 좋으니 운전에 스트레스가 준다. 운전이란 것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며 판단해야 하기에 운전자의 피로감도 커진다. 연비까지 신경 쓰면 피로감은 더 늘어난다. 그래서 가속페달 편하게 밟고, 또 밟는 만큼 잘 달려주는 차에서 만족도가 높아지는 것이기도 하다.

주행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또 하나의 요소는 ADAS다.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및 보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함께 연동돼 작동하는 차로 중앙 유지 기능인 트레블 어시스트, 사각 및 후측방 경고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어댑티브 크루즈에 차로 중앙 유지까지 가능해지니 기능적으로도 국산차 부럽지 않다. 타사와 다른 점이라면 어댑티브 크루즈 활성화 후 트레블 어시스트 버튼을 눌러야 차로 유지 기능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트레블 어시스트 기능만 믿고 딴짓을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폭스바겐조차 이러 기능을 넣는 것을 보니 국산차, 특히 현대기아차에 감사하는 마음도 생긴다. 시장의 중심에 있는 브랜드가 움직여야 비로소 다른 브랜드들도 움직이니까.

어댑티브 크루즈는 거리 조절 범위가 적당하며 가속과 감속을 급하지 않고 부드럽게 해준다. 차로 중앙 유지 기능도 너무 자동차가 주도권을 가져가려 하지 않으면서 유지는 적당히 잘 해준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많은 도움을 주는 요소다.

테스트 모델은 2.0리터 배기량을 갖는 디젤엔진을 달았다. 150마력과 36.7kgf·m의 최대토크를 발휘하는데 출력이 높지는 않다. 4륜과 2WD로 구분되는데, 우리 팀이 만난 것은 앞바퀴 굴림 버전이다.

엔진 출력 150마력, 이전에도 출력은 같았다. 그래도 토크를 2kgf·m 가량 늘렸으니 폭스바겐 나름대로는 뭔가 노력은 했다. 수치적 출력이 높지는 않지만 힘 부족은 느껴지지 않는다. 제법 속도를 잘 붙여 나가는 모습도 좋았다. 푸조 시트로엥도 99마력짜리 디젤엔진으로 일상 영역에서 탈만 했는데, 확실히 출력 대비 체감 성능을 높게 전하는 것을 유럽 브랜드들이 잘 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 테스트도 해봤다. 일상용 150마력 SUV인데, 런치 컨트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가속 시간은 9.61초. 그러나 기대와 달리 출발이 부진하다. 초기에 구동력이 한 번에 몰리면서 휠 스핀을 많이 만들어낸 것. ‘끼기긱’ 정도가 아니라 ‘끼기기기기긱’ 수준이라면 이해가 될까? 런치 컨트롤을 왜 넣었지? 생각 보다 길게 유지된 휠스핀 영향으로 가속 시간에서 손해를 봤다. 4바퀴를 굴리는 4륜 모델이면 기록이 더 단축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가속이 시작된 이후엔 2WD 버전이 더 빠른데, 4륜과 달리 구조가 단순해 구동에 의한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100km/h의 속도에서 정지하는데 이동한 제동거리를 봤는데, 39.02m를 기록했다. 페이스리프트 이전 티구안이 모두 36m 대를 기록했는데, 브레이크 길들이기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다 보니 제 성능이 안 나왔다.

티구안에 장착된 타이어는 피렐리의 스콜피온 베르드. 235 / 50 R19 사이즈를 사용한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성격이다. 4륜 모델에서는 구동력 배분을 통해 타이어 접지 성능이 조금 더 좋게 느껴졌는데, 2개의 바퀴에 구동력이 집중되는 2륜 모델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나오기도 한다. 일상용으로는 충분하지만 재가속 때 아쉬움이 커진다.

변속기의 세련미도 돋보인다. 탑재되는 변속기는 7단 듀얼 클러치. 폭스바겐은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변속기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까지 폭스바겐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특유의 클러치 채결 충격을 남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일반 자동변속기 수준으로 부드럽게 체결되는 모습, 덕분에 저속 주행 스트레스가 없다. 지금까지 폭스바겐의 변속기는 아우디가 사용하는 변속기와 달리 조금 저렴한(?) 감각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는 이러한 부분도 개선했다는 점이 좋았다. 세심하게 완성도를 올렸다는 것.

와인딩 로드에서 주행하면 확실히 독일차 특유의 균형미와 완성도가 돋보인다. 스티어링 휠을 조작해도 너무 민감하지 않게 딱 조작한 만큼 정확히 움직여준다. 최근 만들어진 일부 국산차는 스티어링 조작 때 너무 과한 움직임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반면 티구안은 정직하고 깔끔하게 움직여준다. 꾸미지 않은 순수함?

SUV지만 달릴 때 좋은 균형미를 보여준다는 점도 좋다. 앞바퀴 움직임에 따른 뒷바퀴의 추종성도 좋고 서스펜션도 적당한 롤 허용 이후 든든하게 자세를 잡아 나간다. 본격적인 달리기 전용 모델은 아니지만 운전할 때 재미있다. 그 재미라는 것이 아찔한 움직임이 아니라 안정적인 모습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좋다. 제어가 잘 되는 느낌이 짙다는 것.

2륜 모델로도 안정감은 충분하다. 기본기가 잘 갖춰진 모델이기 때문이다. 일부 국산차는 2륜 모델과 4륜 모델의 주행감각 사이에서 차이가 크다. 4개의 바퀴로 구동력을 배분해 만들어낸 인위적인 안정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티구안은 그런 편법 없이 2륜이건 4륜이건 동일한 안정감과 주행 완성도를 보여줬다.

코너를 빠르게 돌면 언더스티어 성향을 보인 후 기분 좋게 리어축이 따라온다. 때로는 약간의 요(YAW)가 빠른 코너링을 돕는데, 오버스티어라기 보다 코너 안쪽으로 파고들기 좋은 움직임으로 이해하면 된다. 과정에 있어서도 불안감은 없다. 확실히 독일차는 세워 두고 감상하는 용도가 아니라 달려야 한다.

이렇게 일반 도로, 고속도로, 전용 테스트 시설에서 티구안의 다양한 모습들을 살펴봤다. 오랜 시간 테스트 모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단점이 부각되기 마련인데 이번 티구안은 그런 단점을 잘 노출하지 않았다.

3~4천만 원대 SUV 시장이 뜨겁다. 그런 시기에 맞춰 새로운 전략으로 무장한 티구안이 출시됐다. 가격은 기존 대비 200만 원 이상 낮췄다. 하위 트림은 추가 프로모션 혜택으로 3천만 원대 구입 가능하다. 투싼이나 스포티지도 중상급 트림도 3천만 원을 쉽게 넘어선다. 국산차는 갈수록 가격이 높아지고 수입차는 갈수록 가격이 낮아지는 기현상이다.

디자인? 나름대로 젊어 지려고 했다 주행 완성도? 타보면 독일 차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통풍시트가 빠진 점이 아쉽지만 그래도 각종 편의 및 안전 사향을 있는 대로 탑재했다. 실내 디자인이 다소 투박하지만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도 가진다. 여기에 발목을 잡았던 보증 기간도 파격적으로 늘렸다.

그동안 국산 제조사는 수입차 소비자까지 끌어오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 공격도 많이 했다. 이제 수입차도 국산 제조사에 역공을 하기 시작했다. 소박함을 추구하며 조용히 있던 폭스바겐이 선두에 섰다는 점도 재미있다. 신형 제타로 현대 아반떼, 기아 K3를 조준하더니 이제 티구안이 현대 투싼과 기아 스포티지를 노린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국내 자동차 시장. 폭스바겐의 승부수가 시장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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