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트럭으로 변신한,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12.0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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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다. 주로 코치빌더들이 VIP 의전용 차량이나 혹은 연예인들을 위한 밴으로 개조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때 앰뷸런스로 보급된 적은 있다. 다만 한국의 좁은 골목으로 편히 드나들기 어려워 대부분 사라졌다. 따라서 한국에서 스프린터 밴은 적어도 일하는 차의 이미지는 아니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서는 입지가 조금 다르다. 현지에선 포드 트랜짓이나 푸조 밴과 함께 일하는 차로 분류된다. 도이체 포스트를 비롯해 수많은 택배사가 이용 중이며, 각종 간선 물류 밴이나 통학용 버스로 쓰인다. 심지어 건설 자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으로도 이용된다. 물론 고급스럽게 컨버전 된 캠핑카나 VIP 의전 밴도 있긴 하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이스크림 트럭으로 쓰일 만큼 귀여운 인상은 아니란 거다. 무릇 아이스크림 트럭이라 하면 르노 에스타페트나 시트로엥의 2 Van 혹은 VW의 Type 2 캠퍼밴처럼 아이스크림처럼 생긴 차들을 금방 연상하게 된다. 일단 아이들이 접근하기에도 거부감이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굳이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를 아이스크림 밴으로 선택한 회사가 있다.

영국의 휘트비 모리슨은 꽤 이름있는 아이스크림 회사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이 주력 상품은 아니다. 대신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트럭을 전문적으로 컨버전하는 독특한 회사다. 창업주 휘트비 브라이언은 원래 자신이 아이스크림을 팔기 위해 트럭을 개조했는데, 이게 의외로 성능도 좋고 실용성도 높아 주변 사람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브라이언 휘트비는 아이스크림이 아닌 아이스크림 트럭을 팔기로 결심, 이 분야에 스페셜리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스크림 트럭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자전거, 아이스크림 트레일러, 아이스크림 가판대까지 확장했다. 심지어 냉동 기계 관련 부품이나 아이스크림 트럭 광고용 네온사인도 만든다. 물론 아이스크림도 판다. 단지 아이스크림 판매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부가 상품일 뿐이다.

이 회사의 아이스크림 트럭이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벌써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휘트비 모리슨의 아이스크림 트럭을 찾고 있다. 그런데 단지 아이스크림 트럭만 잘 만드는 게 아니다. 휘트비 모리슨의 유명해진 만큼 혁신성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최근에는 아이스크림 트럭을 전동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아이들이 주 고객인 아이스크림 트럭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배기가스도 없고 조용한 전기 트럭이 아이스크림 트럭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 누구보다 빠르게 전기 상용차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최근 메르세데스-벤츠가 이 회사로부터 55대의 스프린터 밴을 주문받았다고 전 세계에 알렸다. 550대도 아니고 단지 55대의 밴을 주문했을 뿐인데, 왜 이 회사를 메르세데스 벤츠가 직접 소개한 걸까? 여기에는 몇 가지 사연이 있다.

우선 메르세데스 벤츠와 휘트비 모리슨의 파트너십은 돈독하다. 이 회사가 개조하는 거의 모든 아이스크림 트럭이 바로 스프린터 밴이다. 거의 매년 85대 이상의 스프린터 밴을 구입해 아이스크림 트럭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단지 이것만으로는 홍보의 이유가 충분치 않다. 사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2차대전 직후 아이스크림은 대단히 특별한 간식이었지만, 오늘날 아이스크림은 그렇지 않다. 아주 흔한 간식이다. 그래서 4/4 박자 왈츠가 나오는 아이스크림 트럭이 돌아다녀도 더 이상 아이들이 따라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스포츠 이벤트나 공연 혹은 특별한 전시행사가 아니면 야외 아이스크림 가판대를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대형화된 아이스크림 브랜드나 대형 슈퍼마켓에 밀려났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COVID-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유럽 전역에서도 자영업자들이 가장 직접적이고 큰 피해를 보고 있다. 도심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게 되면서 로드샵들은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슈퍼마켓도 마찬가지다. 거대한 매장이 전에 없이 한산한 풍경이다.

모두를 힘들게 만든 COVID-19가 놀랍게도 사라져가는 아이스크림 트럭을 다시 부활시켰다.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모든 것을 배달에 의존하는 시대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금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사람이 몰리는 슈퍼마켓에 갈 수 없으니, 아이스크림 트럭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휘트비 모리슨은 55대의 새 메르세데스-벤츠 스프린터 밴을 새로 주문했다. 전시회, 행사, 스포츠 이벤트는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예전처럼 주택가로 학교 앞으로 아이스크림 트럭이 다시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 힘든 시기임에도 위기는 혁신과 희망을 함께 가져온다.

휘트비 모리슨의 스프린터 밴 아이스크림 트럭이 COVID-19의 소비 트렌드에 힘입어 부활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125cc 이하 스쿠터가 엄청나게 팔린다. 소비 트렌드가 배달문화로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COVID-19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자영업 사장님들이 계신다면 휘트비 모리슨의 아이스크림 트럭의 부활과 125cc 스쿠터의 엄청난 판매 트렌드에서 새로운 사업의 아이디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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