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해밀턴, 정치적 견해가 담긴 티셔츠로 물의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11.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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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우리의 삶에 무척 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가깝기도 하다. 멀어져서도 곤란하지만 지나치게 가까워져서도 곤란해질 때가 있다. 특히 본인이 대중을 상대로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일이 누군가를 매우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몇 주 전 그랑프리 당일, 루이스 해밀턴의 행동 역시 FIA 관계자들을 곤란하게 했다. 그는 인종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드라이버 퍼레이드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대중들 앞에 공개했다.

‘브리오나 테일러를 살해한 경찰들을 구속시켜야 한다.’

이 메시지는 포뮬러1 레이스 트랙이 아닌 바깥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그 전말은 이러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6개월 전, 흑인 여성이자 응급구조요원으로 근문하던 브리오나 테일러가 가택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당시 경찰들은 브리오나와 그의 연인, 케네스 워커가 기거하는 주택에 마약이 숨겨져 있다는 첩보를 받았고, 이를 수사하고자 그들을 집을 찾았으나, 케네스 워커는 이들을 침입자라 간주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문을 부수고 내부로 들어갔으며, 이 과정에서 신원을 밝히지 않은 자들의 침입에 위기를 느낀 케네스 워커는 곧바로 경찰을 향해 발포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 1명이 허벅지 총상을 입었으며, 곧바로 경찰들은 대응 사격을 진행, 약 32발의 총을 쏘았다.

하지만 케네스 워커 대신 침대에 있던 브리오나 테일러가 6발의 총알을 맞았고,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게다가 그들의 집에서는 마약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자신들의 과실을 인정했지만, 브리오나 테일러는 사망한 이후였고, 이에 흑인에 대한 강압적 수사 관행에 대한 각성의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결국 당시 브리오나 테일러의 집에 잠입한 경찰들에 대한 살인 혐의 재판이 일어났는데, 결국 경찰 모두 업무상 과실은 인정되나 케니스 워커가 먼저 총격을 가했기 때문에 정당 방위로 인정, 모두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이에 격분한 흑인 인권 운동가들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루이스 해밀턴이 입은 티셔츠는 이 사건과 재판 결과에 대한 항의를 표하는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였는데, 평소 루이스 해밀턴은 자신이 포뮬러1의 유일한 흑인 드라이버이며 따라서 흑인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전세계 수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가운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개인의 견해가 담긴 메시지를 공개했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본 FIA는 포뮬러1과 더불어 FIA는 비정치적 단체이자 스포츠이며, 또한 이 무대에서 일어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루이스 해밀턴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한 것이라 판단했다.

따라서 FIA는 루이스 해밀턴의 행동에 대해 조사까지 고려했으나, 결국 조사 결정은 반려되었다.

다만 FIA 행정 당국은 드라이버들이 레이스 행사에서 지나치게 개인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새로운 규칙과 규정을 도입할 예정이라 했다. 이미 다른 스포츠에서는 이와 유사한 규정이 마련되어 있는데, 가령 UEFA의 경우 개인적인 메시지 특히 인종 차별적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득점 이후 관중이나 카메라에 비추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위반시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그 외 다른 스포츠에서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규정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간 FIA에서는 이와 같은 규정이 마땅히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루이스 해밀턴은 자신의 생각과 견해가 담긴 티셔츠를 입은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으며, 만약 FIA 당국이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라 밝혔다.

다만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새로운 규정이 발휘되는 것에 대해 부당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이번 자신의 행동이 Black Live Matter 운동과 같은 인권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자신은 관계자들이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스포츠 팬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인종 차별 문제와 인류 평등의 문제를 정확히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전부라 이야기했다. 따라서 이런 행동을 단순히 개인의 정치적 견해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전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는 도로 안전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제 행동 역시 도로 안전 캠페인과 같은 개념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포뮬러1에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이루어 온 사람입니다. 만약 지금의 행동들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만들어진다면 이 스포츠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단지 이 스포츠를 정치를 위한 장소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스포츠가 당연히 진전시켜야 할 문제입니다.”

물론 루이스 해밀턴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다. 이날 함께 행사에 참가한 포뮬러1 드라이버들 모두 인종 차별을 끝내자는 END RACISM이 새겨진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다만 루이스 해밀턴의 메시지는 그들보다 직접적이며 특히 특정 사건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약 루이스 해밀턴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을 게시했다면 그것은 크게 문제삼을 일이 아니다. 정치적 견해의 표현에 대한 자유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을 공개한 장소가 수 억명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포뮬러1 그랑프리 TV 카메라 앞이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게 되면 이 메시지는 더 이상 개인의 견해를 떠나 단체의 의견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며, FIA는 철저히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단체로서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을 작성하는 필자 역시도 루이스 해밀턴이 입은 티셔츠의 메시지가 가리키는 사건에 대한 옳고 그름, 그리고 정당성에 대해 이 자리에서 피력할 수 없다. 다만 대중들이 바라보는 스포츠 무대에서 개인의 견해를 전파한다는 것은 무척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다. 루이스 해밀턴은 자신의 행동을 인권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여겼지만, 만약 진정으로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END RACISM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다른 드라이버들과 똑같은 티셔츠를 입어야만 했을 것이다.

경찰을 구속시켜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를 주말 저녁의 즐거움을 위해 TV 앞에 모인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공공 캠페인의 성격이 아닌 개인의 의사에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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