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토마소, 미국에서 다시 부활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10.2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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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큰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판테라라는 단어를 주면 아마 누군가를 향하 주먹을 날리고 있는 앨범 표지와 함께 헤비메탈 그룹 판테라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그들에게 판테라는 페라리, 람보르기니와 함께 70~80년대 이탈리안 익조틱 슈퍼카의 계보를 이어갔던 스포츠카이기 때문이다.

쐐기형의 근사한 쉐이프와 함께 버전에 따라 멋진 리어 윙이 달려 있으며, 특히 오늘날에도 보기 힘든 아주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디자인 때문에 지금도 이 차의 골수팬들이 남아 있을 정도다. 물론 이 차는 문제도 많았다. 조악한 조립 품질 탓에 고장을 달고 살아야 했으며, 특히 차체 부식문제가 무척 심각했다. 또한 거대한 엔진에서 나오는 출력을 버거워하는 운동성능 때문에 다루기 까다로운 차로도 악명이 높았다.

그런 탓에 1971년부터 1992년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생산된 모델 치고는 1만대도 판매되지 못했다. 물론 그런 점들이 마니아들에게는 오히려 판테라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긴 했다. 그리고 판테라는 데 토마소가 만든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자 데 토마소 브랜드의 전성기 그 자체이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포뮬러1 레이싱 드라이버 알레얀드로 데 토마소는 은퇴 후 자신만의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데 토마소를 설립했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자신의 브랜드를 위해 일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판테라의 유명세를 대신할 이렇다 할 성공적인 후속 모델이 없었고, 결국 그렇게 2004년을 마지막으로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러다 2019년,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 데 토마소 이름이 다시 등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도 완전히 새로운 스포츠카 P72와 함께 말이다. 그들의 새로운 스포츠카는 1960~70년대 내구레이스용 스포츠카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 매우 클래식하며 우아한 바디라인을 가지고 있었으며, 5L V8 엔진으로 무려 700마력의 출력을 쏟아냈다.

글라켄하우스의 페라리, P4/5를 손에 넣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클래식 감성에 최신의 자동차 엔지니어링이 반영된 데 토마소 P72는 더 없이 멋진 대안일 수 밖에 없었다. 비록 프로토타입 스포츠카였으나, 그렇게 데 토마소는 P72를 통해 다시금 부활을 알렸다.

물론 엄밀히 말해, 이탈리아에서 창립한 데 토마소와는 사실상 무관하다. 창업주가 사망한 후 폐지된 브랜드를 홍콩의 한 사업가가 사들였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컨셉트카 개념의 스포츠카를 제작한 것 뿐이다.

이러한 방식은 이전에도 자주 있었다. 최근 본 기사를 통해 전한, 들라쥬 역시 같은 개념이며, 부가티 역시 에토레 부가티 이후 사라졌던 브랜드를 이탈리아의 사업가 그리고 훗날 VW이 이어받아 부활시킨 것이다. 따라서 데 토마소 역시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부활을 시도하는 것이다.

2019년 굿우드 페스티벌을 통해 P72를 선보인 이들은 P72의 양산을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일단 이들은 이탈리아 모데나가 아닌 미국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데 토마소 브랜드를 중심으로 미국의 자동차 제조산업의 르네상스를 부활시키겠다는 포부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P72는 그들의 첫 번째 작품이 될 예정이다. 주요 성능을 살펴보면 우선 차체는 모두 카본 파이버로 구성될 예정이며, 디자인은 프로토타입과 거의 다르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알파로메오 티포 33이나 페라리 3/4와 같은 우아한 바디워크에 커다란 에어 인테이크가 B필러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디자인만으로도 P72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60~70년대 스포츠카 레이스 중 프로토타입 클래스로 이와 같은 스타일의 디자인이 유행했는데,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컴퓨터의 도움 없이 오직 경험과 손기술만으로 스포츠카 제작했던 덕분에 오늘날 기준에서도 우아하고 부드러운 라인이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이런 디자인 감성을 21세기의 기술로 손에 넣는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워트레인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5L V8 슈퍼차져 엔진을 탑재할 예정이며, 여기에 매뉴얼 6단 기어가 장착될 것이라 한다. 오늘날 슈퍼카들에게서 유행하는 전기모터 혹은 전기모터 결합형 e 터보차져를 비롯해 DCT와 같은 변속 기술은 일체 배제되었다. 그야말로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이나 속도 클래식하기 이를데 없다.

앞으로 이들은 P72를 72대 가량 한정적으로 제작할 예정이며, 가격은 약 890,000달러 (한화 기준 10억원) 정도가 될 것이라 전했다. 전량 미국에서 제작될 예정인 P72는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이미 생산 계획된 모든 차량의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이렇게 또 하나의 이탈리안 슈퍼카 브랜드가 새롭게 부활을 알렸다. 이와 같은 형태의 부활이 최근들어 더 늘어나는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해보면, 자동차 제조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역시나 역사와 전통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과 함께 하이테크만을 외치고 있는 오늘날의 자동차 회사들의 발걸음에 지쳐, 오히려 클래식한 기계적 감성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데 토마소뿐만 아니라 이탈리안 모터사이클 브랜드 비넬리, 모토 구찌 역시 새로운 주인을 찾아 새로운 브랜드로 부활할 예정으로, 앞으로도 클래식한 기계적 감성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소식들은 계속 들려올 것이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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