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차저 전문 업체 가레트, 파산신청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10.0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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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내연기관 자동차에 탑재되고 있는 터보차저는 이미 1800년대 말부터 존재해왔던 고전적인 장치이다. 처음 이 장치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로, 1905년 스위스의 엔지니어가 비행기를 위한 레디얼 엔진을 위해 도입한 것이 최초였다. 당시 비행기에서 사용하는 엔진은 오늘날 모터사이클의 엔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문제는 고도가 높아지면 산소량이 줄어들면서 원하는 추력을 만들 수 없었다는 점이다.

공기를 압축해 실린더로 넣어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했고,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터보차저다. 이것이 자동차의 영역으로 건너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로 1960년대 GM에서 처음으로 승용차에 터보차저를 탑재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물론 시작은 약 60년 전이었지만, 한참 동안 터보차저는 특정 차량들의 전유물과도 같았다. 예를 들면 더 큰 출력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카 같은 종류 말이다.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포르쉐 911 터보다. 터빈이 추가되는 순간 더 큰 마력을 손쉽게 끌어낼 수 있었으므로, 오죽하면 모델명이 터보이겠는가?

(놀랍게도 포르쉐는 터보라는 이름을 전기차인 타이칸에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런 터보차저가 각광받았던 시기는 대체로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크나큰 위기가 있을 때였다. 가령 1970년 오일 쇼크 때처럼 자동차 엔진의 사이즈를 줄일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에서 터보차저는 과급기로서 큰 역할을 해왔다. 그중에서도 가레트는 터보차저 기술 분야에 선도적인 기업이었다. 1930년대 사업을 시작한 가레트는 당시 시대 상황에 맞게 비행기용 터보차저를 비롯해 컨트롤 패널과 같은 항공용 부품 등을 생산했다.

그러다 1950년대로 넘어오면서 초대형 산업용 차량의 디젤 엔진에 필요한 터보차저 개발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모터스포츠 쪽에서도 엄청나게 중요한 부품 공급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포뮬러1이 터보차저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가레트의 존재가 확실히 부각되었고, 이들은 르노와 함께 포뮬러1에 참가했으며, 이후 르망 24, WRC 등 수많은 모터스포츠 현장과 함께 했다. 게다가 르망에서 아우디의 영광을 만들어 준 장본인들이기도 했으며, 포르쉐와 토요타도 마찬가지, 르망 24에서 이들의 터보차저 기술과 함께 했다.

이러한 경험과 업적 그리고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가레트가 최근 미국 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언뜻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임에 틀림없다. 우선 가레트는 과급기 제조 시장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이며, 또한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내연기관에 터보차저가 장착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가레트의 납품 실적은 꾸준히 개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약 3개월 전, 메르세데스-AMG와 함께 포뮬러1 카에 쓰였던 수준의 전기모터 터빈을 개발, 공급하게 될 것이라는 발표를 했을 정도로 가레트의 분위기는 무척 긍정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레트의 이전 상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회사는 가레트라는 독립적인 회사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항공기 전자 장비를 비롯해 제트 엔진에 이르기까지 항공 우주 분야의 기술과 솔루션을 연구 개발하는 하니웰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업부였다. 따라서 가레트는 하니웰이 보유했던 하나의 부서이자 터보차저의 브랜드였다. 그러다 지난 2018년, 하니웰은 가레트를 독립 분사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하니웰 가레트 사업부에 누적되어 있던 만성 적자 및 부채까지 함께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래서 분명 실적에 있어서는 결코 부정적인 상황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적체되어 있던 적자와 부채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했고 결국 파산 보호 신청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의 문제는 가레트 내부의 기술이나 실적의 문제가 아닌 관계로, 아주 빠른 속도로 이들을 매입할 회사가 나타났다. KPS 캐피털 파트너스라 알려진 사모펀드에서 가레트(정식 명칭은 가레트 모션)를 인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가레트는 현재 약 10억 달러 정도로 기업 가치가 평가되어 있는데, KPS는 이들을 약 21억 달러(약 2조 3,919억 원)에 매입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누적된 적자의 일부를 만회하고,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연구와 실험 그리고 제조를 위한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 밝혔다.

따라서 파산 보호 신청은 했으나 터보차저의 제조와 서비스는 문제 없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은, 터보차저의 시대조차 그리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미 시대는 전기자동차로 방향을 선회했으며, 따라서 터보차저와 더불어 메르세데스-AMG에 공급하기로 한 전기모터 결합형 터보차저 역시 내연기관의 수명 연장과 환경 규제를 피해가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레트 모션이 사업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이 회사에는 이미 방대한 수준의 노하우와 데이터가 쌓여 있다. 예를 들면 110,000 rpm을 상회하는 회전량에도 견딜 수 있는 임팰러 베어링 기술이나 600도 이상의 고온에도 형태를 유지하는 케이스 주조 기술과 더불어 고온 고압에서 정교하게 회전하는 임펠러 제작 기술처럼 단시간에 완성할 수 없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전기자동차 시대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에 가레트의 노하우는 충분히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인수로 인해 발생한 재정적 여유가 이들의 미래 산업에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예측된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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