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은 독일을 대표하는 대중 브랜드 중 하나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아우디 A3,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가 대중 시장으로 진입하자 폭스바겐도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한 차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페이톤과 투아렉이다.

대형 세단 페이톤은 벤틀리와 플랫폼을 공유했다. 국내서는 가성비 좋다는 3.0 TDI가 잘 팔렸지만 세계 시장은 페이톤을 냉담히 바라봤고, 결국 후속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물론 중국 시장에서 피데온이 활약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아테온이 폭스바겐을 대표하는 세단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BMW X5, 메르세데스-벤츠 ML-클래스 등과 경쟁하기 위해 등장한 투아렉은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페이톤과 달리 후속 모델에게 바통을 넘겨 오늘까지 왔다.

폭스바겐코리아가 판매하기 시작한 투아렉은 3세대 모델이다. 지난 2018년에 세상에 나왔는데, 국내 시장 데뷔는 올해 2월에 이뤄졌다.

기존 투아렉은 부드러운 느낌을 전했다. 그러나 3세대 모델부터 최근 폭스바겐이 사용하는 각진 이미지를 대폭 늘려 강한 느낌을 전달한다. 특히 헤드램프와 연결된 가로줄 그릴이 강렬한 이미지를 가진 신세대 SUV의 느낌이다. 우리 팀이 만난 테스트 카는 R-라인으로 범퍼 양 측면을 고성능에 어울리게 꾸몄다.

측면도 직선이 중심을 잡았다. 큰 차체지만 비율이 좋아 둔한 움직임을 보일 것 같지 않다.



투아렉에 장착된 에어 서스펜션은 기능성 외에 안정감 있는 자세(높이)도 만들어 준다. 블랙 컬러의 휠이 장착되었는데, 화이트 컬러의 바디와 묘한 대비를 이룬다. 휠은 20인치이며, 윈터 타이어를 장착하기 위한 임의적 설정이며, 본래 R 라인의 것은 21인치가 기본이다.

후면에서도 선의 조화가 눈길을 끈다. TOUAREG라는 모델명 하단의 직선이 특히 강렬하다.

램프도 각진 형태인데, 범퍼 디자인과 균형을 잘 맞췄다. 머플러도 리어 램프와 유사한 디자인이며, 범퍼에 팁만 붙인 것이 아닌 진짜 머플러다.

동급 최대 15인치 디스플레이가 만든 매력

도어를 연다. 제법 묵직한 느낌이 좋다. 다만 도어를 부드럽게 닫도록 도움을 주는 소프트 클로즈 기능이 없다.

시트는 폭스바겐에서 늘 보던 전통적인 스타일이다. 하지만 좋은 소재가 착석감을 키운다. 스티어링 휠도 이전에 봐왔던 스타일인데, 세대 진화에 어울리는 개성을 부여해 주면 좋겠다.



또한 운전석 도어부터 센터페시아를 가로질러 조수석 도어까지 연장된 실버 패널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고급화를 보여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모든 아쉬움을 잠재울 ‘한 방(?)’이 있다. 폭스바겐이 이노비전 콕핏(Innovision Cockpit))라 부르는 새로운 실내는 앞으로 나올 신차의 트렌드를 잘 보여주는 예다. 특히 센터페시아를 장식한 15인치 급 디스플레이 패널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사진으로 볼 때도 크다 싶었는데, 실제 대면하니 존재감이 더 크게 다가온다. 이 패널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작동 때 쓰는데, 디스커버 프리미엄(Discover Premium)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불린다.

다른 차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지만 패널 가까이 손을 가져가면 추가 메뉴가 나온다. 이는 운전 중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사용 때 편의성을 높임과 동시에 안전한 주행에도 도움을 준다. 캐딜락도 내비게이션(Map)에 이 기능을 넣었는데, 폭스바겐은 이를 응용해 더 많은 기능이 구현되도록 확장했다. 또, 스마트폰의 홈버튼 개념을 도입해 초기 화면으로 쉽게 되돌아갈 수도 있도록 꾸몄다.

후방카메라 화질도 좋다. 360도로 보여주는데 주차에 도움이 된다. 부가 기능으로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도 지원한다. 하지만 15인치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 못하고 일정 부분 고정된 형태로 마무리했다. 아직 이들이 개발한 시스템이 대화면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기판도 다양한 정보를 보여준다. 아우디처럼 계기판 대부분을 지도로 채울 수도, 원하는 내용을 골라 좌우에 배치할 수도 있다. 다만 주행모드 변화에 따른 테마 변경 기능은 없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투아렉의 자랑이다. 폭스바겐 모델 중에서 가장 큰 사이즈(217 X 88 mm) 인데, 운전할 때 시원시원하게 정보를 보여줘 좋았다.

전통적 스타일의 시트. 에르고 컴포트 시트라고 불리는데, 사보나(Savona) 가죽으로 제작됐다. 18방향으로 전동 조작돼 운전자 체형에 맞추기 좋다. 국내 시장에서 선호하는 통풍 및 열선 기능은 지원하나, 마사지 기능은 없다.

뒷좌석은 여유롭다. 슬라이딩 거리도 넉넉하고 시트백 각도 조절도 된다. 쿼드 존 공조장치를 지원하고 하단에 SUV 포트를 2개를 마련했다. B-필러에 송풍구도 있다. 다만 4륜 구동 채용에 따라 센터 터널이 조금 높아졌다.

적재 공간도 충분하다. 짐을 싣기 편하게 차고를 낮춰주는 기능도 있다. 버튼을 누르면 된다. 시트 폴딩도 되는데, 타사 모델처럼 전동이면 좋겠다.

일부 소소한 기능이 아쉽지만 폭스바겐 스타일을 감안할 때 나름대로의 고급화는 추구했다. 하지만 이제부터 진짜다. 고급차는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고급차의 느낌을 보여야 한다. 비싼 접시에 담겼다고 최고급 요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은 접시에 담기기 전에 좋은 소재로 정성 들여 맛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 맛의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비로소 미식가들의 지갑을 열 수 있다. 고급차도 품격에 맞는 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투아렉은 MLB EVO 플랫폼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시승한 벤틀리 벤테이가, 지난해 만난 포르쉐 카이엔도 이 플랫폼을 쓴다. 플랫폼은 단순한 뼈대의 시작이기에 최종 완성본이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틀로 시작한 것은 분명하다.

엔진은 3.0 디젤이 기본이다. 향후 고성능 지향의 4.0 TDI가 나온다. 오래전 얘기지만 투아렉에는 다양한 엔진이 적용됐다. 그룹 내 상징 중 하나인 12기통(W12) 엔진이 얹힌 적도, R50 버전은 5.0 TDI 엔진도 썼다. 향후 다기통 엔진이 쓰일 가능성은 낮지만 이런 역사들만 봐도 폭스바겐이 투아렉을 얼마나 아껴왔는지 알 수 있다.

3.0 TDI 엔진은 3500rpm 이후 최고 출력 286마력을 낸다. 최대 토크는 2250~3250rpm 사이에서 나오는데 최대 61.2 kgf·m를 낼 수 있다.

변속기는 8단 자동이다. 엔진과 변속 시간 매칭이 좋아 초기부터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달리는 맛을 전한다. 이제 다단화 변속기에서 나오던 저속 쇼크 문제를 보여주는 브랜드도 거의 없는 것 같다. 물론 ZF가 만든 변속기이기에 아쉬움이 사라진 것일지도 모른다.

가속부터 해보자. 달리는 맛이 제법 좋다. 차체 무게가 다소 나가는 편이라 중량에 의한 안정감이 가속감을 둔하게 만들지만 속도계 바늘은 빠르게 상승한다. 배기량 대비 좋은 성능을 보여주고 있음에 분명하다.



여기서 발진 가속성능을 확인해 보자. 우리 팀이 계측한 결과 6.17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했다. 제조사 발표 수치는 6.1초. 그렇다면 0.07초 가량 늦은 것인데 이 정도는 오차 범위에 불과하다. 또한 투아렉 3.0 TDI R 라인에는 21인치 휠이 쓰인다. 이를 제외한 다른 트림은 20인치 휠을 쓴다. 20인치 휠이면 6.1초 또는 그보다 빠른 성능을 기록할 가능성도 있다. 예전 5.0 TDI 엔진을 쓴 R50의 발진 가속성능이 6.7초였으니 기술의 발전을 한 번 더 실감하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국도로 접어들어 거친 노면을 만나도 이 편안함은 그대로 유지된다. 서스펜션이 작은 진동조차 잘 잡아내기 때문인데, 투아렉은 에어 서스펜션을 쓴다. 이 서스펜션의 장점이 잔진동 억제 능력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셀프 레벨링이다. 일정한 지상고를 유지하는 것.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잔진동 억제 능력만큼 승차감에 큰 영향을 준다.

에어 서스펜션의 성격 변화를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컴포트와 스포츠를 오갈 때다. 스포츠에서는 다소 과하다 싶을 만큼 서스펜션이 탄탄해진다. 차량이 미세하게 통통 튀며 달리는 느낌인데, 마치 고성능 스포츠카에서 느끼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거친 노면을 달릴 때면 마치 엉덩이로 도로를 훑는 느낌마저 든다.

바디 롤 억제 능력도 상당하다. 4.0 TDI에는 전자제어식 스태빌라이저가 들어간다. 우리 팀은 테스트하며 3.0 TDI에도 이 기능이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실수였다. 그 정도로 단단히 차체를 붙들며 바디롤을 억제시킨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4.0 TDI의 성능에 관심이 더 커졌다. 하지만 3.0 TDI도 차고 넘치는 성능을 보여준다.

코너 진입 이전의 짧은 브레이킹. 타이어가 살짝 미끄러지는데, 이는 타이어 그립 저하가 원인이다. 아쉽게도 테스트카에는 피렐리의 윈터 타이어가 장착된 상태로 왔다. 겨울철 노면을 위한 것이지만 성능이 대폭 낮아졌다. 그럼에도 제동거리는 좋았다. 시속 100km에서 정지하기까지 41.19m를 기록했다.

브레이크 페달 조작감은 좋다. 기계적인 감각을 잘 확보한 시스템이다. 제동력도 좋은 편인데, 윈터 타이어를 끼운 상태로 41.2m 내외를 기록했다. 또한 유사한 수준의 제동거리를 이어나갔다. 제동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참고로 윈터 타이어를 사용한 아우디 A6가 46m 수준의 제동거리를 보인 바 있다. 타이어 크기, 성능 차이가 있긴 하나 투아렉의 성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하기엔 충분하다.

코너를 돌아 나간다. 같은 그룹사 포르쉐가 32:68 수준의 구동 배율을 선호하는데, 투아렉은 앞뒤 배분을 맞춘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앞뒤 구동력을 앞뒤로 70, 80%가량 보낼 수 있고 그 시간이 빠른 편이라 대략 약한 언더스티어 특성을 보인다.

폭스바겐은 자사의 4륜 구동을 4모션(4Motion)이라 부른다. 투아렉의 4모션에는 센터 디퍼렌셜 잠금 기능이 주어진다. 리어 축 디퍼렌셜을 잠그는 기능은 없지만 운전석에 앉아 다이얼 하나를 돌려 다양한 오프로드 환경에 대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에어 서스펜션을 통한 지상고 조정 기능도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 대비 오프로드 성능이 조금 떨어졌다는 평도 있지만 1억 원에 육박하는 고급형 SUV로 오프로드를 누비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성능 측면으로 본때 투아렉은 충분한 만족감을 전한다. 특히 부드러운 서스펜션이 다수의 승객을 편하게 할 것이다. 다만 가격이 걸린다. 1억이나 주고 폭스바겐 브랜드 차를 구입할 가치가 있을까? 여전히 폭스바겐은 독일을 대표하는 대중 브랜드의 일원이다. 스스로 프리미엄이 되고 싶어 하긴 하나 아직 이를 인정하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투아렉만큼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고급차의 대열에 낄 능력을 갖췄다. 하나 정도는 예외가 된다는 얘기다. 눈에 띄는 화려함은 없지만 순수한 기계적 성능과 기능성으로 볼 때 그렇다.

아마도 나뉠 것이다. 부가 기능을 중심에 두고 고급화된 느낌을 좋아하는 소비자라면 국산 제네시스 GV80 같은 솔루션이 이상적이다. 반면 오랜 시간, 다수의 차를 통해 쌓은 감각으로 차를 본다면 순수한 자동차가 보여주는 기계적 감각을 더 중시하게 된다. 그런 소비자라면 투아렉이 싸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적어도 유사한 구성을 갖춘 포르쉐 카이엔 보다 수천만 원 이상 저렴하니까.

하지만 모든 소비자들이 순수한 기계적 감성과 가치를 읽어 나갈 수는 없다. 폭스바겐 스스로 상품에 대한 자신감을 갖추더라도 때로는 타협할 가격이 중요 해진다는 의미다. 우리 팀은 투아렉의 가격이 5~10% 정도 저렴해질 때 최고의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본다. 물론 지금도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니 할인이 많이 주어지지는 않겠지만 가격 경쟁력이 더 커지면 투아렉을 엿보는 소비자들이 늘 수밖에 없다. 국산 SUV의 가격이 8~9천만 원대에 와있다는 것. 이것이 기회가 된다. 그동안 팔 차가 없어 고민하던 폭스바겐이 아니던가?

저작권자 © 오토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