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도어 쿠페, 멸종의 시대와 직면하다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04.01 15:13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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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아마 수만 년 전 공룡들도 자신들의 뼈가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될 줄 몰랐을 것이다. 물론 알았다고 해도 딱히 뾰족한 수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등장한 후 시간이 지나 사라진다는 건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아무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숙명의 굴레에서 자유로웠던 존재는 없었다.

이는 인간의 피조물에도 적용된다. 단적인 예로 중세 시대 사람들은 인간들이 더 이상 말이나 당나귀가 끄는 마차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타고 다닐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마차는 테마파크에나 가야 겨우 볼 수 있는 희귀한 존재가 됐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피조물이 멸종을 눈앞에 둔 순간을 바라보고 있다.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푸조에는 근사한 2도어 쿠페나 해치백이 많았다. 406 쿠페를 비롯해, 최초의 디젤 엔진 하드탑 컨버터블로 불렸던 308 CC 같은 모델도 존재했으며, 우아한 더블버블 루프를 가진 RCZ까지 출시했다. 하지만 지금의 푸조를 보면, 2도어는 쿠페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컨버터블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이다.

비단 푸조뿐만이 아니다. 아마 최근 볼보만 아는 사람들이라면 과거에 컨버터블과 2도어 쿠페, 심지어 4인승 컨버터블을 출시했던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볼보의 모델 리스트에 더는 이런 모델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볼보의 과거를 잘 모르는 이들은 볼보가 SUV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회사쯤으로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브랜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컨버터블과 쿠페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BMW 딜러사들은 최근 출시된 8시리즈의 판매가 난항을 겪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나마 4도어 쿠페인 그란 쿠페는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2도어 쿠페는 예상을 밑도는 수준이라 밝혔다.

폭스바겐은 무려 70년간 명맥을 이어왔던 비틀을 단종시켰다. 이들은 자신들의 시작이었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추억은 가져다준 비틀에게 헌정하는 영상 “The Last Miles”를 공개하면서 비틀과의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이 영상은 무척 감성적이고 따뜻하게 표현됐지만,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The Beetle의 처참한 판매 실적으로 인해 더는 이와 같은 형태의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 것이 옳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브랜드들이 2도어 쿠페를 철수시키거나 혹은 그럴 수 없을 때에는 다른 브랜드와 공동으로 개발해 개발비를 절감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BMW Z4와 토요타 수프라이다.

다시 푸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PSA 그룹이 변화를 맞이한 것은 2010년대 중반 무렵으로 그 당시 임원진이 교체되면서 팔리지 않는 모델에 대한 대대적인 청소 작업이 시작됐고, 그 대상들이 바로 위에서 거론했던 2도어 해치백이나 쿠페 또는 하드탑 컨버터블들이었다. 사라진 그 자리를 2008, 3008, 5008과 같은 SUV들이 차지했다.

그리고 푸조는 2017년 그들의 첫 번째이자 가장 온전한 형태를 지닌 SUV, 3008을 카 오브 더 이어에 올려놓았으며, 이를 기점으로 다시 매출이 상승했다. 다른 회사들도 비슷하다. 쿠페와 컨버터블을 삭제하는 대신 그 자리를 잘 팔리는 장르, 정확하게는 SUV로 대신했다.

또한 빈자들의 슈퍼카라 불렸던 3도어 해치백 모델들도 모두 리스트에서 제거해버렸다. 그렇다고 핫해치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던 투 도어 폭스바겐 Mk1 GTI나 르노 클리오 RS의 자리를 계승하는 모델은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푸조의 CEO, 장 필립 임파라토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 역시도 쿠페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쿠페가 사라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개발을 위한 투자 자금을 조성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 푸조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들의 신차 개발 자금은 전기자동차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구 개발비 중 상당수가 새로운 배터리와 전기모터, 그리고 경량 소재를 비롯해 5G 커넥티비티와 함께 자율 주행 자동차 개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는 신모델의 개발에 더는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또한 위에 나열한 개발 대상 기술의 경우 장기적 투자가 불가피하며, 이 부문 역시 단기적으로 수익을 얻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존립을 결정짓는 중장기 투자에 해당되므로, SUV와 같이 곧바로 팔리는 모델이 아닌 쿠페나 컨버터블을 새롭게 개발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소비자 편에서 쿠페와 컨버터블을 더 이상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상황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쿠페나 컨버터블처럼 불편을 특별함으로 승화시킨 자동차들을 "니치 비히클"이라 부르는데, 현재 가장 많은 경제 순환이 일어나고 있는 실리콘 밸리에서도 예전만큼 "니치 비히클" 소비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반대로 그들은 더 크고 더 편하며 더 효율적인 자동차를 원하고 있으며, 그런 차가 바로 SUV이기 때문에 크로스오버나 SUV가 세단까지 밀어낼 정도의 강세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여전히 쿠페를 제작하는 브랜드는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쉐보레는 콜벳을 출시하면서 다시금 스포츠카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었으며, 포드 역시 머스탱을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4도어 쿠페를 처음으로 소개한 메르세데스-벤츠는 여전히 2도어 쿠페와 컨버터블을 내놓고 있는 회사다. 하지만 이들도 언제까지 쿠페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쉐보레는 이미 2023년 이후 카마로를 단종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포드는 머스탱을 전기자동차를 위한 브랜드로 승격시키면서 기존과는 다른 컨셉트의 머스탱으로 바꾸어 나갈 계획을 발표했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공룡이나 마차를 보듯 쿠페와 컨버터블을 바라봐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자리를 쿠페형 SUV나 컨버터블 SUV들이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하던 나지막하고 아름다운 루프 라인과 단 두 사람만을 위한 독점적이고 사치스러운 도어를 지닌 쿠페를 그리워해야 할 대상으로 넘겨야만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분명 지금의 트렌드는 크로스오버와 SUV이고, 쿠페와 컨버터블을 먼저 멸종시킨 푸조도 이 시대가 영원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다시 세단이 SUV를 밀어낼 것이라 이야기했다.

또한 인간이 가진 열망의 근본으로 돌아가면, 원래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숭배했으며 그것을 위해 무엇이든 기꺼이 바쳐왔다.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쿠페와 컨버터블을 손에 넣기 위해 세단에 비해 2배 이상의 가격을 선뜻 지불할 의향을 내비쳐온 심리 밑바닥에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과 숭배 사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가 증명해온 인간의 본능에 따르자면, 전기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자동차 패러다임을 위한 기술 투자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판매가 본격적으로 일어나 BEP를 넘어설 경우, 분명 자동차 회사들은 로맨틱한 감성의 쿠페와 컨버터블을 다시금 만들어 낼 것이다.

물론 미래에 대한 확실성은 어디에도 없다. 아름다운 자동차가 멸종해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쿠페와 컨버터블의 부활을 바라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오랜 세월에 걸친 인간의 학습된 본능임을 믿는 것 밖에 없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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