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 엘바, 첫 번째 파파야 오렌지 카의 부활

  • 기자명 박종제 에디터
  • 입력 2020.03.3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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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마다 레이싱 컬러가 존재하듯,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브랜드별 테마 컬러도 존재한다. 페라리는 당연히 빨간색일 것이고, BMW는 푸른색을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는 실버가 이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맥라렌은?

1990년대 말부터 맥라렌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맥라렌의 테마 컬러를 말보로 레드 혹은 로켓 레드로 기억할 것이다. 레이싱 팀 "맥라렌 레이싱"에서 썼던 컬러이기 때문이다. 페라리의 스칼렛 레드에 비해 확실히 톤이 밝고 강렬한 이 컬러는 2000년대 말까지 꾸준히 사용되었던 컬러였다.

그런데 사실 이 컬러는 맥라렌의 고유한 컬러는 아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맥라렌을 인수한 론 데니스의 컬러였다. 그는 원래부터 맥라렌의 주인은 아니었다. 프로젝트 4 레이싱 팀을 소유하고 있던 레이스 팀의 오너였는데, 만수르 오제와 인연으로 다 쓰러져가던 맥라렌을 사들여 오늘날의 맥라렌을 만든 사람이다.

그의 업적은 화려하다. 일단 맥라렌 레이싱을 우승할 수 있는 팀이 되었고, 그가 진행했던 맥라렌 F1 스포츠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오늘날 가장 값비싼 스포츠카의 반열에 올랐으며, 지금은 매년 1가지 종류 이상의 새로운 신차를 꾸준히 내놓은, 그야말로 성공한 스포츠카 브랜드로 진화했다.

따라서 그는 맥라렌을 오늘날의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 공로자 동시에 맥라렌 제국의 황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쩌면 그는 엔초 페라리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맥라렌의 이전 시대 역사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지배하던 시절 맥라렌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한 가지 컬러가 있었다.

바로 파파야 오렌지다. 이 컬러는 론 데니스, 테드 마이어 이전 "맥라렌 레이싱 팀"을 창단했던 브루스 맥라렌이 지정한 컬러였다. 주황색과 노란색이 절묘하게 섞인 이 컬러는 당시 어떤 레이싱 팀에서도 사용하지 않았던, 오직 맥라렌만을 위한 컬러였고, 브루스는 이 컬러를 입힌 다양한 스포츠카와 포뮬러 카를 다양한 레이스 시리즈에 내보냈다.

그중 M6A는 브루스가 미국 모터스포츠에 진출하기 위해 제작한 Can Am 레이스 카다. 1967년 Can-Am 시리즈에 출전하기 위해 만든 이 스포츠카는 그 해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브루스 맥라렌은 레이싱 드라이버며 동시에 레이스 카 제작자로서도 각광받을 수 있었다.

당시 그들이 타고 나갔던 M6A를 통해 처음 선보인 컬러가 바로 지금 보고 있는 파파야 오렌지다. 하지만 테디 마이어가 맥라렌을 인수한 후 필립모리스가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이 컬러는 봉인됐고, 이후 론 데니스가 이 회사를 사들이면서 영원히 맥라렌의 역사에서 지워지는 것만 같았다.

맥라렌의 역사를 기억하는 수많은 팬들은 왜 맥라렌은 파파야 오렌지를 쓰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계속했고, 그때마다 맥라렌은 파파야 오렌지와 어울리는 스폰서가 있다면 언제든 우리의 레이스 카를 파파야 오렌지로 칠할 수 있다고만 답했다. 물론 지극히 외교적인 대답이었다.

하지만 현재 론 데니스는 왕좌에서 물러났다. 주주들의 결정에 의해 그가 물러난 이후, 맥라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파파야 오렌지 컬러를 부활시키는 것. 그들은 웹사이트의 테마 컬러를 바꾸었고, 메인 페이지 전면에 1967년 포뮬러1 카와 자신들의 스포츠카 MP4/12C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그리고 지금, 맥라렌은 그들의 첫 번째 파파야 오렌지 카, M6A를 완벽히 닮은 오마쥬카를 소개했다.

엘바(Elva)라 이름 붙여진 로드스터는 1967년 Can Am 시리즈에서 컨스트럭터 우승을 차지한 M6A를 오늘날의 언어로 해석한 스포츠카이다. 맥라렌 스페셜 오퍼레이션즈에서 개발한 이 차는 당시 M6A를 완벽히 재현하고자 루프는 물론이고 윈드 실드까지 완전히 제거했다.

원래 로드스터란 이런 차를 의미했다. 개폐식 지붕이 아닌 영구적으로 지붕이 삭제된 스포츠카 말이다.

또한 좌우로 높이 솟아오른 펜더 역시 오리지널 모델에서 영감을 받았다. 물론 M6A만큼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드라이버 시트에 앉아 앞을 바라보면 노즈 대신 양쪽에 불룩이 올라온 펜더만 보일지도 모른다.

또한 노즈 깊숙한 곳에 마련된 에어덕트 역시 레이스 카에 적용했던 프런트 덕트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친스플리터를 통해 들어와 라디에이터를 식힌 공기가 빠져나갈 에어 홀이자 동시에 사라진 윈드 실드를 대신해 드라이버에게 불어닥칠 주행풍을 어느 정도 막아줄 에어 커튼의 역할도 겸한다.

AAMS(Active Air Management System)이라 불리는 공기역학적 설계 방식에 의해 엘바에 탑승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지간한 주행 속도에서도 바람소리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게 맥라렌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빙 헬멧을 쓰고는 차마 런던 시내를 돌아다닐 수 없다는 사람들을 위해 MSO는 고정형 윈드 실드를 선택할 수 있게 문을 열어두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돈으로 지불해야 하겠지만.

파워 트레인은 M6A와는 비교할 수없이 진화했다. 당시 쉐보레의 5.9L V8 엔진을 사용했던 M6A에 비해 엘바는 4L V8 트윈 터보로 M6A보다 무려 175마력이나 더 높은 804마력을 뽑아낸다. 게다가 현재까지 제작한 맥라렌 오토모티브의 스포츠카 중 가장 가벼운 무게를 자랑한다고 하니, 이 차가 트랙에서 얼마나 민첩한 움직임을 보여줄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차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역시나 리버리(Livery)다. 이 에디션은 브루스 맥라렌이 처음으로 파파야 오렌지 컬러를 적용했던 M6A의 리버리를 그대로 사용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론 데니스가 있었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이 차에 적용된 파파야 오렌지는 1967년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좀 더 짙고 어두운 오렌지에 펄 느낌이 강한 페인트를 적용했으며, 가운데에 푸른색이 감도는 도브 그레이 스트라이프를 넣었다. 그리고 스트라이프 위에는 오래전 브루스 맥라렌이 있던 시절의 회사 로고인 맥라렌 카즈 레터링을 삽입했으며, 브루스 맥라렌이 탔던 M6A에 적용된 그의 시그니처가 들어갔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에어 인테이크와 프런트 노즈에 표기된 레이싱 넘버 4는 1967년 브루스 맥라렌이 배정받았던 레이싱 넘버였다.

맥라렌의 첫 번째 파파야 오렌지 카, M6A를 현대적 감성으로 멋지게 재해석한 엘바는 399대만 생산될 예정이며, 리버리의 경우는 몇 대의 엘바에 적용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만약 리버리의 적용을 원한다면 MSO에 따로 연락을 취해보는 것이 좋겠다. 맥라렌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파파야 오렌지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고 있으며 20억 원의 돈을 자동차를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리버리의 선택은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원히 잊힐뻔했던 맥라렌 역사의 시작을 경험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박종제 에디터는?

F1 레이싱 코리아 전 편집장으로 포뮬러 1과 관련된 뉴스 그리고 레이스의 생생한 이야기와 트랙 밖의 이야기를 다수의 매체를 통해 전해왔다.

레드불 코리아, 한국 타이어 매거진 뮤(MiU) 등의 온/오프라인 채널에 F1, 24h 르망, WRC 등 다양한 글로벌 모터스포츠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모터스포츠 및 자동차 전문 에디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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