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대 팰리세이드 시동 꺼짐(?) 과연 문제일까?

  • 기자명 김기태 PD
  • 입력 2020.01.31 15:51
  • 댓글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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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현대차 팰리세이드가 돌풍을 일으키는 중이다. 지난해 이맘때는 신차 효과 덕분에 많은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은 시동 꺼짐 문제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실수로 한 소비자가 내리막길에서 R(후진) 기어를 선택했고, 이후 차량 무게 등의 영향으로 탄력을 받아 미끄러지던 팰리세이드의 시동이 꺼지면서 통제 불능 상황에 이르며 전복된 것. 다행히 탑승객은 무사했다.

그리고 여론은 시동 꺼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의 시동 꺼짐, 과연 문제일까?

기자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 자동차 시장에서야 10~20년 경력을 가진 전문 기자나 1~2년 경력을 가진 유튜버나 똑같이 취급되고 있지만 오랜 경력을 갖는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별다르게 하는 것 없이 나이만 먹은 기자들도 있긴 하다.

그럼 이번 사태의 몇몇 것들을 보자.

최근 한 언론사는 팰리세이드의 문제로 떠오른 내리막길 시동 꺼짐을 문제 삼으며 이 현상을 재현했다. 이후 쉐보레 말리부 및 BMW 5시리즈 등으로 추가 시험을 벌였다. 그 결과 BMW는 미끄러짐이 발생하자 기어를 중립으로 바꿨고, 말리부는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힐 스타트 어시스트(HSA) 기능을 작동시키며 멈춰 섰다. 결론적으로 이들 차량에서는 시동 꺼짐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는 안전에 대한 개념 없는 현대기아차 만의 문제일까?

잠시 시간을 2016년으로 돌려보자.

오토뷰 로드테스트 팀은 이 현상에 대한 취재를 벌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쉐보레 말리부의 시동 꺼짐 사태와 연결해 이 영역까지 취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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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말리부 1.5T 시동 꺼짐 문제 언제 잡힐까?

http://www.autoview.co.kr/content/article.asp?num_code=59452&news_section=column_kimpd&pageshow=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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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당시엔 말리부의 시동 꺼짐에서 발생된 이슈 때문에 취재를 했지만 사실 이런 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과거 르노삼성차에서였다.

그리고 그 결과 몇몇 모델에서 시동 꺼짐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했다. 언덕을 향해 주차한 뒤 기어를 D(전진)로 놓은 상태, 또는 내리막을 향해 주차한 뒤 기어를 R(후진) 놓고 앞쪽으로 차가 미끄러지게 되면(일정 거리 이상 움직이자) 엔진 시동이 꺼졌던 것이다. 통상 수 m 이상 움직여야 이 현상이 나왔다.

쉐보레 말리부도 2016년 당시엔 시동이 꺼졌다. 그리고 렉서스 IS200T가 HSA를 작동시키며 멈춰 선 바 있다.

당시 한국지엠, 르노삼성은 자사 홍보팀을 통해 비정상적인 조건에서는 파워트레인 보호를 위해 시동이 꺼지도록 프로그램 돼 있다는 내용을 전해왔었다.

정리하면 국산, 수입차 등 이미 시장에 팔린 상당수 차량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나온다는 얘기다. 즉, 렉서스처럼 제조사가 세밀한 부분까지 배려했다는 것은 칭찬할 내용임에 분명하다. 이번 계기를 시작으로 현대차도 비정상 주행 조건에서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것을 프로그래밍을 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비정상 작동 조건에서 파워트레인 보호를 위해 시동을 꺼지도록 설정된 것이 문제라고 몰아가는 것 자체가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따진다면 비정상적인 조건을 부여해 차를 망가뜨리는 것에 대해서도 제조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여담이지만 버튼 방식으로 변속하는 자동차를 테스트(시승) 할 때 전진 중 다른 버튼을 누르는 시험도 한다. 하단 사진은 최근 우리 팀이 테스트한 포드 몬데오(Ford Mondeo) 영상 중 일부다. 차량이 40~60km/h로 주행하는 환경에서 강제로 후진(R) 버튼을 눌러 오작동 여부가 있는지 테스트한 것이다. 우리는 최초 이 시험을 2013년 링컨 MKZ 테스트 때 진행했었다. 주행 중 변속 버튼을 누르는 시험은 운전자의 실수가 아닌, 동승석에 앉은 어린이나 기타 승객의 부주의로 변속 버튼이 눌렸을 때를 감안해 실시하는 것이다.

이번 팰리세이드 사고는 아쉽게도 전복 사고로 마무리됐다. 만약 인적이 드문 넓은 도로에서 차량 파손 및 사고 없이 차량만 밀리다 엔진이 망가져 자비로 수리를 하게 된 케이스가 되었다면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엔진 보호를 위해 시동을 끄지 않은 제조사를 탓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

차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식을 갖추면 비정상 조건을 걸어 차를 망가뜨릴 수 있다. 파워트레인은 물론, 특정 부속을 망가뜨리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자동차의 기본 안전장치인 브레이크 시스템? 새 브레이크 시스템을 완전히 망가뜨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데 얼마나 소요될까? 믿지 않겠지만 5분 내외면 충분하다. 거짓말이라고? 아니! 직접 시험해 본 일이다. 당시 국산, 수입 등 몇몇 차량으로 이를 경험해 봤다. (이 시험은 모 제조사의 도움으로 허가된 차량과 통제된 장소에서 진행됐다.)

여론을 잡고 흔드는 것도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능력 중 하나다. 언론은 물론 유튜브, 블로그 등 다양한 매체가 현대기아차의 홍보 및 국내영업본부 산하에 있다. 여론을 쥐고 흔드는 현대차가 오히려 여론에 뭇매를 맞는 상황이 재미있다. 그동안 현대기아차 품 안에서 재미를 보던 다수의 매체들은 이런 내용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 컨텐트를 내놓지 않고 있다.

반면 광고 수익에 목마른 일부 유튜버들이 이 내용으로 소비자들을 자극해 조회수를 득하고 있다. 정말 많은 차를 시험하지도 않은 채 일부 신차 케이스만 갖고 현대기아차에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문제인냥 몰아가는 사람도 있다. 안타까운 우리 업계 현실이다.

진짜 전문가들은 쉽게 말하지 않는다. 시장에는 많은 자동차가 있고, 여기서 나오는 문제의 원인 또한 다양하기 때문이다. 반면 매체들은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은 외면한다. 그들 매체가 원하는 것은 다양한 변수에 의한 가능성이 아닌, 자극적인 인터뷰다. 다양한 검토를 해봐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 따위보다, 앞뒤 다 자르고 이 문제가 심각하다며 몰아가는 답변을 해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을 선호한다.

가짜 뉴스가 수없이 나도는 세상이다. 이번 사고의 피해자가 현대차를 대상으로 수억 원, 그리고 최근 발표된 최고급 SUV를 보상으로 내놓으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돈다. 사실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가정하고 현대차가 그 조건을 수용한다면, 기자는 내일 당장 현대차를 계약할 것이다.

정상 주행 범위를 넘어선 영역에 대한 예방 조치는 제조사 의지에 따른 문제다. 하지만 정상 주행 범위를 넘어서 발생된 현상에 대한 것조차 제조사가 떠안아야 한다면? 기자 일보다 문제를 만들어 제조사를 겁박하는 것이 월등히 생산적이다. 적어도 올 한해 동안 수십억 원은 거뜬히 벌 수 있다.

누군가는 현대차 편을 든다며 '기레기' 운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바이럴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 역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다. 반 현대, 친 지엠이라는 것도 그들이 만들어준 선물(이미지)이다. 덕분에 현대기차아의 문제를 지적할 때, GM 차를 칭찬할 때 눈치를 봐야 한다. 누구보다 그들의 여론 몰이에 반감을 가진 사람 중 하나라는 얘기다. 하지만 기자의 일이란 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또한 쌓인 노하우에 근거를 두고 올바른 정보를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육상 트랙에 선수들이 서있다. 출발 신호를 받고 도약하던 한 선수가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경기 주최 측, 경기장 시공업체, 신발 제조사 등등 누구에게 잘못을 물어야 할까?

매우 빠른 속도로 코너에 진입했다. 하지만 언더스티어 현상으로 차가 미끄러져 사고를 당했다. 운전자는 ESP(자세제어장치)가 제 역할을 못했으며, 언더스티어를 막아준다던 토크 벡터링조차 무용지물이었다고 말한다. 당신이 재판관이라면 누구의 손을 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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