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Review] 3만개로 빛을 나누다, LCD 헤드램프

  • 기자명 뉴스팀
  • 입력 2017.11.0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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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자동차의 조명은 심지에 불을 붙어 사용하는 등불이었다. 이 불을 오래 밝히기 위해 동물기름을 비롯한 고체 연료 같은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조명 기술은 전등이라는 것이 발명되고 나서 획기적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할로겐 전구를 통해 더 밝고 오래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HID 라이트는 전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매우 밝고 넓은 시야를 운전자에게 선물했다.

이어서 등장한 LED 라이트는 전면 카메라를 통해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개별적인 센서를 작동시켜 원하는 부분에 선택적으로 빛을 집중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빛을 더 강하고 멀리 보낼 수 있는 방법으로 레이저를 광원으로 사용하는 시대까지 오게 됐다. 일반 LED 라이트가 상향등을 사용하면 약 300m까지 비출 수 있는 반면 레이저 라이트의 경우 2배 먼 거리인 600m까지 밝힐 수 있다. 그리고 이 레이저 라이트는 가장 앞선 기술로 평가돼 BMW i8과 7시리즈, 아우디 R8과 같은 소수의 차량에서만 적용돼 이미지리더 역할을 해왔다. 그것이 2013년의 일이다.

항상 그래왔듯 기술은 더 편리하고 더 뛰어난 것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이제 밝기와 관련된 기술은 더할 나위 없이 발전했기 때문에 조명 개발 업체들은 빛으로 어떤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조명으로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부분적으로 조명을 밝히고 어둡게 만들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헤드램프 속에 여러 개의 발광 소자를 넣기 시작했다.

이러한 부분에서 혁신성을 인정받은 것은 아우디의 매트릭스 LED(Matrix LED)다. 한쪽 헤드램프당 25개의 작은 LED로 구성되는데, 이들 LED는 각각 1개의 반사판에 5개의 LED가 묶여있는 형태를 갖는다. 윈드실드에 위치한 카메라가 전방 상황을 주시해 마주 오는 차량이나 선행하는 차, 혹은 사람을 인식하면 해당 영역에 속하는 LED만 조명을 꺼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눈부심은 억제하면서 운전자에게 밝은 시야를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 개의 LED 소자를 사용해 조명을 선택적으로 밝힐 수 있게 되자 한 헤드라이트 안에 최대한 많은 LED를 넣고자 하는 것이 조명 기술 발전의 트렌드로 자리잡게 됐다. 현재 이 부분의 가장 뛰어난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로, 멀티빔 LED(Multibeam LED) 헤드램프가 여기에 속한다.

멀티빔 LED 헤드램프는 한 개의 헤드라이트 안에 무려 84개의 LED 소자를 위치시켰다. 이를 통해 아우디의 매트릭스 LED와 비교해서 보다 정교하고 깔끔하게 원하는 부분을 비추고 어둡게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럼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한 헤드램프 안에 더욱더 많은 조명장치를 넣으면 보다 자연스럽고 다양하게 조명을 다룰 수 있다는 것. 조명의 집적도가 헤드라이트의 경쟁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현재만해도 한 헤드라이트에 84개나 되는 LED를 넣고 있는데 여기에서 더 LED를 더 추가했다가는 불필요하게 부피만 커지고 무게도 증가하며, 만약 그렇게 만들었더라도 제대로 조명을 활용할 수 있을지 여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조명 기술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개발됐다. 새로운 라이트의 이름은 리퀴드 크리스털 HD 헤드램프(Liquid Crystal HD Headlamp). 이름은 거창하지만 LCD를 활용한 조명 시스템이다. 여기서 LCD는 우리가 컴퓨터 모니터나 TV 등에 사용하는 그 LCD가 맞다.

헤드라이트에 LCD가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LCD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면 쉽다. LCD는 간단히 수직 편광필름, 액정, 수평 편광필름으로 구성된다. 이중 액정(液晶, Liquid Crystal)이라고 말하는 이 물질은 전류가 흐르지 않으면 입자가 불규칙적으로 배열돼 수직 편광필름을 통해 들어온 빛을 수평 편광필름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액정에 전류가 흐르면 입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돼 수직 편광필름을 통해 들어온 빛이 수평 편광필름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화면이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것을 조절할 수 있는 LCD 픽셀이 완성된다. 여기에 붉은색, 녹색, 푸른색으로 이뤄진 필터를 더하면 한 개의 컬러 픽셀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수백, 수천, 수만개가 모이면 우리가 알고 있는 TV나 모니터가 된다.

그럼 LCD 헤드램프의 원리를 이해해보자. 먼저 헤드램프 내부에는 25개의 LED가 자리한다. 그리고 이 LED는 특수 렌즈를 통해 빛을 강하고 고르게 분포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빛은 LCD 디스플레이로 전달된다. 빛을 전달받은 LCD는 원하는 픽셀에 빛을 통과시키거나 막음으로써 빛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 각각의 LED 소자로 다양한 빛의 조합을 만들어낸 것에서 발전해 픽셀 단위로 빛을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LCD 라이트는 어느 정도 수준의 픽셀 집적도를 가질까? 300x100으로 무려 3만개다. LED를 3만개나 만드는 수준의 결과물을 LCD를 활용해 만들어낸 것이다. LED 개수의 개념에서 해상도의 개념으로 빛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발전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3만개의 픽셀을 활용해 빛을 밝힐 수 있는 만큼 리퀴드 크리스털 HD 헤드램프는 빛을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도 갖게 됐다. 전방이나 마주 오는 차량만 부분적으로 어둡게 해주는 것 정도는 매우 쉽다. 차량이 앞선 차량과 가까워지면 자체적으로 거리가 얼마나 가까워지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다.

보행자를 발견하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에 보행자가 있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현재 자전거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다. 또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위험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차량이 추월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표시해주기도 한다.

만약 트럭이나 버스 등을 추월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예상 경로를 표시해 트럭이나 버스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그만큼 추월시 운전자가 받는 부담감은 더 낮은 것이다.

마치 게임을 즐기는 것과 같은 기능도 활용할 수 있다. 주행 중 코너를 돌거나 다른 길로 빠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진행방향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 길을 건너려는 사람을 만나면 가상의 횡단보도를 만들어 줄 수 있고, 차선을 바꿀 때 주위 차량들에게 미리 알려줄 수도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집을 포함해 목적지에 도착하면 운전자에게 메시지를 보여줄 수도 있다.

LCD 패널을 효과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컨트롤 유닛은 초당 60회에 이르는 신호를 보내 3만개의 개별 픽셀을 제어한다.

이번 LCD 신기술은 독일 연방교육연구원((BMBF)이 후원하는 VoLiFa2020(차세대 자동차 램프 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풀 어댑티브 라이트 기술 개발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시스템 요구사양은 포르쉐와 파더보른 대학의 라이팅 기술 연구소인 L-LAB에서 설계했고, 헬라(Hella)가 LCD 헤드램프의 광학 시스템을 개발했다. 현재 시제품을 포르쉐 파나메라에 탑재돼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으며, 2020년 안으로 양산화될 예정이다. 향후 헬라는 현재의 3만 픽셀급 LCD에서 5만 픽셀급 LCD 헤드램프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헤드램프에 LCD 기술이 적용되면서 조명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은 무궁무진해졌다. 안전과 관련된 기능은 기본. 여기에 어떠한 정보를 표시하는지, 어떻게 그림으로 묘사할지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명을 활용할 수 있다. 자유자재로 빛을 다루는 단계에서 창조적으로 빛을 다루는 단계까지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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