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 Review] 3초에 모든 것을 건다, TOP FUEL 레이싱카

  • 기자명 뉴스팀
  • 입력 2015.03.3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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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궁극의 경주용 자동차’라고 하면 모든 자동차 경기 최상위 카테고리인 F1이나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내구레이스를 떠올린다.

이처럼 궁극의 경주용 자동차에 미국산 차량을 지목하기는 쉽지 않다. 아직은 퍼포먼스보다 직진 가속 성능을 중시한다는 이미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직진 가속 성능을 ‘궁극’의 형태로 발전시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러한 존재가 바로 미국 드래그 레이싱 최상위 카테고리인 ‘탑 퓨얼(Top Fuel)’ 레이싱카다.

드래그 레이싱. 일정 거리의 직선 도로를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경기로, 흔히 자동차의 100미터 달리기와 비교되곤 한다. 현재 드레그 레이싱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 다양한 형태로 개최되고 있지만 미국 국제 핫로드 협회인 NHRA(National Hot Rod Association)를 통해 정식 자동차 경기 대회로써 운영되고 있다.

NHRA 드레그 레이싱 시리즈는 기본 엔진만을 사용해야 하는 프로 스톡(Pro Stock), 무제한 급 튜닝 부문인 프로 모디파이드(Pro Modified), 수천 마력을 발휘하는 드레그 레이싱 전용 차량을 사용하는 퍼니카(Funny Car), NHRA 최상위 클래스인 탑 퓨얼(Top Fuel) 시리즈로 구분된다.

일반적인 드레그 레이스는 약 1/4마일(약 402m)의 거리를 달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 짓는다. 하지만 탑 퓨얼 클래스는 단 300m만 달린다. 이 거리만으로 속도가 500km/h를 훌쩍 넘어버리는 만큼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사고가 발생해 드라이버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2012년부터 탑 퓨얼 클래스는 300m만 달리는 것으로 법이 개정됐다.

대체 탑 퓨얼 클래스는 얼마나 빠를까? 일반적으로 탑 퓨얼 레이스카는 출발 후 0.5초만에 이미 120km/h에 도달한다. 불과 6.4미터 이동한 순간이다. 1초가 지나면 약 22.8미터를 이동하고 속도는 180km/h까지 치솟는다.

다시 0.5초가 지나 1.5초가 되면 속도는 260km/h를 넘어선다. 38미터를 이동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2초가 되면 속도는 340km/h를 넘어서고 거리는 70미터 이상 이동한다. 2.5초 상황에서 속도는 400km/h에 도달하고 속도에 탄력을 받아 128미터를 달려나간다. 3초가 지나면 속도는 442km/h 이상에 200미터 가까이 도달한다. 거대한 윙 덕분에 이 상황서 발생하는 다운포스는 무려 2.3톤에 이른다.

3.5초 구간은 속도가 470km/h까지 상승하며, 이동거리는 240미터에 도달하게 된다. 이후 3.8초 전후로 300미터를 완주하고 이때 속도는 510km/h를 넘어선다.

순식간에 막대한 힘을 발휘해야 하는 만큼 엔진의 동력이 타이어를 통해 지면으로 전달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해진다. 지진계를 통해 측정한 결과 2대의 탑 퓨얼 차량이 경기를 진행할 때 리히터 규모로 2.3에 해당하는 진동이 관측됐다. 이는 수 km 밖에서도 미세한 진동이 감지되는 실제 지진과 동일한 수준이다.

그만큼 가속시 운전자가 받는 중력가속도는 4G 이상에 이른다. 이는 우주선 이륙시 발생하는 가속도와 동일한 수준이다. 또 발생하는 소음도 막대하다. 약 150 데시벨 이상의 소음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제트기 혹은 권총과 동일한 수준의 소음이다.

탑 퓨얼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반 내연기관 엔진을 사용한다. NHRA는 엔진 배기량을 8.2리터에 보어 106.4mm, 스트로크 114.3mm를 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엔진은 코끼리 엔진(Elephant Engine)이라는 별명을 갖는 크라이슬러 426 헤미(426 Hemi) 엔진이다.

발휘하는 출력은 최소 8천마력에서 1만 마력, 토크는 830kg.m에서 1천kg.m 사이다. 하지만 이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예상 출력과 토크로, 실제로 이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다. 출력과 토크가 너무나도 막강해서 일반적인 측정장비로는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1만마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 위한 원천은 연료다. 탑 퓨얼 차량이 사용하는 연료는 니트로메탄(Nitromethane). 로켓 연료와 동일한 성분이다. 일반적으로 니트로메탄과 메탄올을 9:1로 섞어 사용하지만 비율 자체가 강제적이지는 않는다.

니트로메탄을 사용하는 이유는 극히 일부분의 산소만으로도 완전 연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1kg의 가솔린을 태우기 위해서 필요한 공기의 양은 14.7kg이다. 하지만 니트로메탄은 1.7kg의 공기만 필요할 뿐이다.

공기가 적게 필요하다는 것은 제한된 공간인 피스톤 안에 공기대신 연료를 더 많이 넣을 수 있다는 뜻이고, 결국 더 큰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론적으로 동일 공간에 니트로메탄이 가솔린보다 8.6배 많은 연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피스톤 압축비도 6.5:1로 낮춰 보다 많은 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34바 이상의 압력으로 연료를 밀어내는 연료 펌프는 1분에 378리터 이상을 뿜어낼 수 있다.

니트로메탄은 연소시 화염의 온도는 약 2,400℃ 전후이며, 층류연소 속도는 약 50cm/s를 갖는다. 이는 가솔린의 연소 속도보다 30% 이상 빠른 수치다. 제한된 공간에 더 많은 연료가 더 빨리 타버리니 엔진의 힘을 쉽게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다.

기화열이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액체 상태의 연료가 기체화되면서 흡수하는 열을 기화열이라고 한다. 기화가 이뤄진다는 것은 엔진의 온도를 내려주고, 낮아진 온도를 바탕으로 보다 높은 밀도 환경을 갖추게 된다. 니트로메탄의 기화열은 0.56MJ/kg으로, 가솔린의 0.28MJ/kg보다 높다. 여기에 같은 공간에 넣을 수 있는 밀도가 8.6배 높으니 10배 가까운 냉각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탑 퓨얼 차량은 라디에이터 없이 연료 자체로 냉각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만큼 식성도 대단하다. 탑 퓨얼 차량이 1초에 먹어 치우는 니트로메탄은 약 4.5리터 이상. 300미터를 완주하면 65리터 이상의 연료를 소모한다. 여기에 경기 준비를 위한 웜업, 번아웃 등의 과정을 거치면 한번 경기에 100리터 이상의 연료를 사용한다.

보다 큰 출력을 위해 슈퍼차저를 사용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과급압만 5.0바에 이르며, 슈퍼차저가 돌아가는 속도는 엔진 크랭크샤프트가 회전하는 속도보다 빠르다. 어지간한 엔진은 탑 퓨얼 전용 슈퍼차저를 돌릴 수 조차 없다. 이 슈퍼차저가 본래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600마력의 힘으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3초의 시간 동안 1만마력 이상의 힘을 뿜어내는 만큼 경기 이후에는 대부분의 부품들이 녹아 내리는 등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클러치를 비롯해 피스톤과 커넥팅 로드, 피스톤 링, 스파크 플러그 등 주요 부품 대부분을 교체해야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데, 전문 미케닉들에 의해 분해 후 재조립되기까지 40분이 소요될 뿐이다. 이때 한 번 주행 후 연료 주입과 엔진 부품 교체에 사용되는 비용은 약 5천달러(약 550만원) 정도다.

탑 퓨얼 차량은 별도의 변속기 없이 엔진의 동력이 바로 휠로 전달되는 방식을 사용한다. 동력을 끊고 이어주는 클러치가 변속기의 역할까지 겸한다. 1만마력의 동력을 전달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클러치 디스크만 5장이다. 클러치는 원심 구동 방식을 사용한다. 클러치가 회전하면 원심력에 의해 디스크와 연결되는데, 속도가 빨라질수록 2번부터 5번 디스크까지 연결되면서 엔진 회전수와 구동축 회전수가 동일해진다.

차량의 동력을 노면에 전달시켜주는 타이어 역시 강한 내구성을 갖도록 제작된다. 기본적으로 후륜은 36인치 크기의 타이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주행을 시작하면 원심력에 의해 타이어가 지름이 44인치까지 증가한다. 이를 2톤이 넘는 다운포스로 누르면서 돌진하는 것이다. 타이어의 스트레스가 상당하기 때문에 8번만 주행하면 수명을 다한다.

제동 시스템은 카본-카본 브레이크 시스템을 사용한다. 지나치게 높은 속도가 일반 브레이크 시스템으로는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작동하면 디스크의 온도는 1천도 가까이 상승하며, 이것만으로 부족해 2개의 낙하산이 펼쳐지도록 설계됐다.

자동차는 각 국가별 문화에 따라 상이하게 발전해나가고 있다. 유럽이 어떻게 코너를 빠르게 탈출할 것인지를 연구하면서 F1까지 발전시켜왔다면 막대한 출력을 바탕으로 지진까지 일으키며 달려나가는 탑 퓨얼 레이싱카는 미국식 문화를 반영한 정점의 레이싱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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